곽효환(43) 시인
만주·중국 남부·서역 곳곳
세월 거스른 시·공간 여행
잊고 지낸 닮은 얼굴 ‘문득’
세월 거스른 시·공간 여행
잊고 지낸 닮은 얼굴 ‘문득’
〈지도에 없는 집〉
곽효환 지음/문학과지성사·7000원 “칠흑의 길을 앞서 간 이들을 따라/ 바다를 닮은 호수를 품은 내륙 도시를 지난다/(…)// 엉엉 울며 혹은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걸어간 사람들에 대하여/ 그 슬픈 그늘에 대하여//(…)// 고맙다고/ 고마웠다고/ 그래서 나 오늘 다시 이 길을 간다고/ 무심히 여름 벌판을 적시는 강물에도 길이 있다고/ 길 너머 다시 길이 있다고”(<앞서 간 사람들의 길> 부분) 두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집>에서 곽효환(43·사진)은 앞서 간 이들이 열어 놓은 길을 뒤좇으며 그들의 눈물겨웠던 삶을 돌이키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여덟 편의 ‘열하기행’ 연작을 비롯한 그 길 시편들에서 시인의 발길이 주로 향하는 곳은 고구려의 고토였던 만주와 중국 남부의 상해 임시정부 유적지들이다. 그가 겨레의 역사와 현실에 유난히 예민한 촉수를 지녔음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다가 대뜸 민족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일 일은 아니다. 그는 연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한 연구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에서 백석과 이용악으로 대표되는 대륙적 정서와 상상력을 천착한 바 있다. 한때 우리 것이었으나 어느 땐가 잃어버린 그 정서와 상상력을 향한 그리움이 시인의 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끊어지고 흩어진 길들/ 그 길이 낳는 낯선 새로움 하여 열린 길들/ 어느 길도 가지 못할 길은 없다/ 돌아오지 못할 길 또한 없다/(…)/ 사라진 궤적을 찾아/ 지평선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향해/ 가고 또 오는 길 위의 사람이고 싶다”(<다시 길에 서다-열하기행 1> 부분) “혹독한 계절을 타고 풀과 물을 따라 유목하는/ 길 위의 사람들에게 아득한 시절의 내가 있다/ 말을 타고 건넌 초원과 사막과 호수와 강의 기억들/(…)/ 북방 대륙을 가로질러온/ 나를 닮은 검은 얼굴들이 있다”(<나를 닮은 얼굴들> 부분)
알타이 산맥 아래 몽골 초원에서 자신을 닮은 얼굴들을 발견하는 시인의 태도를 민족주의라고 한다면 그 민족주의는 열린 민족주의라 해야 할 것이다. 같은 시에서 길을 두고 쓴 표현마따나 “열려 있으나 올곧고 막힘없으나 여유로운” 것이 그 민족주의의 성격이다. 시인은 북방 고토에서만이 아니라 도처에서 자신 및 주변 사람들과 닮은꼴을 찾아낸다. 우루무치 인근 목장에서 마주친 유목민 모자를 보며 “왠지 그녀가 아내 같고 아이가 아들 같”(<남산목장 신강-위구르 여인>)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멕시코행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인디오 노파한테서는 “거친 에네켄 농장에서 사나운 가시에 찔린/ 곪은 피 뿜으며 몸을 놀리는 내 할머니〔와〕 어머니”(<내 이름은 멕시코언>)를 본다. 이것을 두고 시인이 유목민 모자와 인디오 노파를 제 민족의 틀 안으로 포섭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뿌리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반드시 진출과 확장, 정복 같은 배타적·공격적 민족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소통과 교섭, 연대의 열린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만주와 중국 남부, 서역 등지를 대상으로 삼는 공간 여행과 더불어 시인은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 여행에도 나선다. “전주천 공수레 다리 아래로 흘러”(<고무신 배를 띄우다>)간 유년, “낡고 해진 아버지의 사진첩”(<아버지의 사진첩>), 그리고 “아련히 흑백으로 빛나는 기억들의 출발점”(<텔레비전, 박치기왕 김일>)이 그 여행의 목적지들이다. <텔레비전, 나의 근대>라는 시에 따르면 흑백 진공관 텔레비전의 주름문이 열린 뒤 펼쳐지던 “놀랍고 새로운 세상”에 지금 시인은 와 있는 것인데, 이제 그는 오히려 주름문의 안에서 바깥을 그리워한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상징되는 근대의 속도와 번잡에 지친 그가 아버지의 사진첩 속 느린 세계를 그리워하는 다음 대목을 보라.
“시간이 그림이 되어 멈추는 그곳에서 느리게/ 느/ 리/ 게 살았으면,/ 다시 그렇게”(<아버지의 사진첩> 부분)
시집 <지도에 없는 집>에서 곽효환은 시간과 공간의 두 좌표 위를 바지런히 여행한다. 표제작에 따르면 그 여행은 “세상에 대한 기억마저도 비워낸 것 같은” 여행이며, 그 여행 끝에 시인은 “지도에 없는 길이 끝나는 그곳에/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집 한 채 온전히 짓고 돌아왔다.” 그 집이 바로 이 시집이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곽효환 지음/문학과지성사·7000원 “칠흑의 길을 앞서 간 이들을 따라/ 바다를 닮은 호수를 품은 내륙 도시를 지난다/(…)// 엉엉 울며 혹은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걸어간 사람들에 대하여/ 그 슬픈 그늘에 대하여//(…)// 고맙다고/ 고마웠다고/ 그래서 나 오늘 다시 이 길을 간다고/ 무심히 여름 벌판을 적시는 강물에도 길이 있다고/ 길 너머 다시 길이 있다고”(<앞서 간 사람들의 길> 부분) 두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집>에서 곽효환(43·사진)은 앞서 간 이들이 열어 놓은 길을 뒤좇으며 그들의 눈물겨웠던 삶을 돌이키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여덟 편의 ‘열하기행’ 연작을 비롯한 그 길 시편들에서 시인의 발길이 주로 향하는 곳은 고구려의 고토였던 만주와 중국 남부의 상해 임시정부 유적지들이다. 그가 겨레의 역사와 현실에 유난히 예민한 촉수를 지녔음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다가 대뜸 민족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일 일은 아니다. 그는 연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한 연구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에서 백석과 이용악으로 대표되는 대륙적 정서와 상상력을 천착한 바 있다. 한때 우리 것이었으나 어느 땐가 잃어버린 그 정서와 상상력을 향한 그리움이 시인의 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끊어지고 흩어진 길들/ 그 길이 낳는 낯선 새로움 하여 열린 길들/ 어느 길도 가지 못할 길은 없다/ 돌아오지 못할 길 또한 없다/(…)/ 사라진 궤적을 찾아/ 지평선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향해/ 가고 또 오는 길 위의 사람이고 싶다”(<다시 길에 서다-열하기행 1> 부분) “혹독한 계절을 타고 풀과 물을 따라 유목하는/ 길 위의 사람들에게 아득한 시절의 내가 있다/ 말을 타고 건넌 초원과 사막과 호수와 강의 기억들/(…)/ 북방 대륙을 가로질러온/ 나를 닮은 검은 얼굴들이 있다”(<나를 닮은 얼굴들> 부분)
〈지도에 없는 집〉
시집 <지도에 없는 집>에서 곽효환은 시간과 공간의 두 좌표 위를 바지런히 여행한다. 표제작에 따르면 그 여행은 “세상에 대한 기억마저도 비워낸 것 같은” 여행이며, 그 여행 끝에 시인은 “지도에 없는 길이 끝나는 그곳에/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집 한 채 온전히 짓고 돌아왔다.” 그 집이 바로 이 시집이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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