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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억불바위 사람들 마음속에 ‘답’이

등록 2010-10-08 19:36

남루한 조손가정 주인공들
부처를 닮아가는 과정 담아
올해도 기어이 두번째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매년 두세 권씩 왕성하고 성실하게 생산해온 한승원의 새 장편소설 <피플 붓다>가 나왔다. 작가의 고향인 장흥 진산의 억불산에서 힘을 받아 썼다는 이 책은 부처바위 아래 살면서, 부처를 닮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실상은 이럴지도 모른다. 누구의 눈엔 억불바위는 자비로운 미륵부처이긴커녕 영락없는 며느리상 돌덩이일 뿐이고, 베트남 어머니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야반도주해버린 주인공 손자와 할아버지의 삶은 부처를 닮기엔 조손가정 이름 그대로 턱없이 남루할 뿐이다. 게다가 한국말을 기름지게 일구어 온 작가가 “찌질하고 까리한 좁밥” 청소년들의 말을 고스란히 들여오면서 “말로써 다리를 놓고 싶은” 마음조차 다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망 높은 교장이었건 말건, 지금 염꾼으로 두사람 밥벌이를 해야 하는 할아버지는 손자한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 “나는 그냥 늙은 염꾼,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자유로운 우주의 청소부일 뿐이다.” 할아버지 주위의 인물들이란 판검사도 하룻밤에 녹여냈다는 기생 송미녀든, 착실한 국어교사였던 오순옥 선생이든 지금은 덜렁거리는 몸과 마음을 그에게 떠맡긴, 온통 과거에 사는 사람들뿐이다. 책 말미에 굳이 청소년 용어집을 덧붙인다고 했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 책은 성장도 소통도 아닌 그저 노인이 지어낸, 노인을 위한 세계를 담은 소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송미녀를 염하는 자리에 손자를 불러들인다. “허무를 맛보아야 거침없이 헌걸차게 커나간다.” 부실한 한쪽 다리를 끌고 수능날 억불바위를 기어오르는 손자에게 고작 이런 충고라니. 틈만 나면 콧구멍을 벌려 여자친구가 풍기는 싱싱한 냄새를 탐하는 손자 앞에서 말라비틀어진 젖가슴과 역한 젓갈 냄새가 솟구치는 음부를 정성스럽게 닦고 틀어막는다. 한때 그것들이 꼿꼿하고 성성했을 때를 일일이 애도하면서 관능과 허무를 하나로 봉합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억불바위를 쳐다보며 산다. 미친 여자와 한방에 동거하기도 하고, 졸업식날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를 때려눕히며 산다. 그 답은 다 억불바위에서 온 것이라지만 실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나온 답이다. 작가가 여러차례 ‘억불’은 ‘인민부처’의 다른 말이라고 밝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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