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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0-10-08 19:43

가족입니까
가족입니까
4개 단편소설 하나로 엮어
‘애어른’ 청소년에게 던지는
가족의 의미에 대한 `화두’
얼굴은 예쁜데 연기할 땐 나무토막 같은 여고생 예린, 최신형 휴대전화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남중생 재형, 잘나가는 광고회사 여성 팀장 안지나, 출판사를 운영하는 중년 남성 박동화. 대낮 분수공원 앞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이들 네 사람의 관계는?

휴대전화 판촉사원은 “아버님! 가족분들 핸드폰 안 필요하세요?” 하고 이들을 불러 세운다. 굳이 아니라고 밝히지 않는 한 누구라도 그렇게 볼 관계다. 하지만 굳이 밝히자면, 이들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을 콘셉트로 한 휴대전화 광고의 모델들이다.

<가족입니까>는 네 명의 작가가 이 네 명의 등장인물을 내세워 쓴 단편집이다. ‘자라는 건 나무토막이 아니다’(예린·김해원) ‘지금하세요’(안지나·임태희) ‘관계자 외 출입금지’(재형·김혜연) ‘아르고스의 외출’(박동화·임어진)이 그것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광고 촬영을 중심으로 서로를 넘나들며 엮이고 있어, 여타 옴니버스 소설과는 달리 한 편의 장편소설로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가족입니까
가족입니까
“너희, 가족이 뭔지 충분히 고민은 해봤니?” 안지나 팀장은 촬영을 앞두고 예린과 재형에게 묻는다. 아이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엄마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오디션장을 오가는 예린에게 가족은 ‘울타리’다. 울타리는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예린에겐 가로막이다. 재형에게 엄마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갇힌 예린과 막힌 재형은 답답하다. 안지나 팀장의 질문은 그대로 <가족입니까>가 청소년들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얌전히 앉아 있기엔 너무 커버린, 그렇다고 그 울타리를 뛰쳐나오기엔 아직 어린 청소년들에게 제안하는 거다. 그 답답함의 근원, 너의 ‘가족’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찬찬히.

물론 가족은 그렇게 간단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그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잠시 벗어났을 때 ‘반짝’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정도다. 물처럼, 공기처럼. 엄마와 다툰 뒤, 혼자 사는 이모인 안지나 팀장의 집에 머물며 광고를 찍게 된 재형은 생각한다. ‘학교 다녀와서 혼자 요리를 해서 우아하게 식사하고 독서하고 공부하는 것은 정말 망상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밥은 컵라면으로 대충, 독서와 공부는 무슨,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졸리면 자고. 그게 전부였다. 멋지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가족은 대충 그런 거다. 안에 있으면 답답한데, 뛰쳐나와 봤자 뾰쪽한 수가 없는. 네 사람은 이렇게 휴대전화 광고를 찍는 동안 가족에 대한 불만을 덜어내고 이해를 넓혀간다.

<가족입니까>는 엄마, 아빠, 딸, 아들의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주는 데 꽤 공을 들인다. 게다가 이들 각각은 서로 다른 가족에 속해 있다. ‘가족이 뭐냐’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고, 저마다 떠올리는 가족의 상이 다르다는 걸 배려한 친절한 구성이다. 하지만 비록 가족은 달라도 다양한 ‘가족 문제’를 푸는 ‘모범적인 답안’은 충분히 예견 가능하다. 가짜 가족을 이룬 네 사람이 하는 일이 ‘휴대전화 광고 촬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다. 가족이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든지, 지금 당장, 소통하는 것 아니겠는가. 청소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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