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
‘사회적 침묵’ 중 쓴 304편 추려
다국적 민중 애환 시어로 담아
다국적 민중 애환 시어로 담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지음/느린걸음·1만8000원 <노동의 새벽>(1984)의 시인 박노해(53)가 네 번째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내놓았다. 옥중에서 낸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1993)과 1999년의 세 번째 시집 <겨울이 꽃핀다>에 이어 11년 만의 소출이다. “침묵정진 하는 동안 쓴 시 5천여 편 중에서 304편을 가려 뽑았다”는 시집은 560쪽의 두툼한 분량.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길이 끝나면> 부분) 시집 맨 앞에 실린 이 시에서는 ‘실패한 혁명가’를 자처하는 시인이 정직한 절망을 통해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안간힘이 읽힌다. 시집에는 ‘사회적 침묵’을 선언한 2000년 이후 전세계의 기아 및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생명·평화·나눔’ 운동을 펼쳐 온 시인의 족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라크 소년, 전사한 친구의 유지를 받들어 투쟁의 삶을 산다는 쿠르드 여자 게릴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위를 하는 잉카의 후예, 하루 종일 망치로 돌을 깨는 노동을 하는 다섯 살 소녀 라냐…. 이런 다국적의 민중들 속에서 고향 친구의 정겨운 사투리는 오히려 신선하다.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꼬막> 부분)
고향 친구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것이 도시에서의 삶이다. “도시의 나를 움직이는 모든 것이/ 비교경쟁이고 일상의 전쟁인데// 비즈니스는 총만 들지 않은 전쟁이고/ 전쟁은 총을 든 비즈니스인데”(<도시에 사는 사람> 부분). 시집은 전체적으로 절망과 반성의 기조가 승하지만 마지막에 실린 표제시에서 시인은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희망의 근거를 노래한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부분).
글 최재봉 기자,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노해 지음/느린걸음·1만8000원 <노동의 새벽>(1984)의 시인 박노해(53)가 네 번째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내놓았다. 옥중에서 낸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1993)과 1999년의 세 번째 시집 <겨울이 꽃핀다>에 이어 11년 만의 소출이다. “침묵정진 하는 동안 쓴 시 5천여 편 중에서 304편을 가려 뽑았다”는 시집은 560쪽의 두툼한 분량.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길이 끝나면> 부분) 시집 맨 앞에 실린 이 시에서는 ‘실패한 혁명가’를 자처하는 시인이 정직한 절망을 통해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안간힘이 읽힌다. 시집에는 ‘사회적 침묵’을 선언한 2000년 이후 전세계의 기아 및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생명·평화·나눔’ 운동을 펼쳐 온 시인의 족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라크 소년, 전사한 친구의 유지를 받들어 투쟁의 삶을 산다는 쿠르드 여자 게릴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위를 하는 잉카의 후예, 하루 종일 망치로 돌을 깨는 노동을 하는 다섯 살 소녀 라냐…. 이런 다국적의 민중들 속에서 고향 친구의 정겨운 사투리는 오히려 신선하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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