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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북한에 아첨문학만 있는 건 아냐 다양한 문인도 꽤 있습니다”

등록 2005-06-23 17:08

‘국경을 세번 건넌 여자…’쓴 탈북 시인 최진이씨

어느 누가 지금 그의 당차고 밝은 얼굴에서 6, 7년 전 두만강에서 벌어진 ‘필사의 탈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는 이제 초등학생 아들(10)의 사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평범한 어머니이고, 석사논문 영어 자격시험 준비에 골머리를 썩이는 대학원생(이화여대·여성학)인데…. 6, 7년의 시간은 옛 사건의 흔적을 몽땅 삼켜버렸을까.

죽음을 무릅쓴 북한 탈출기와 남한에서 보낸 생활의 에세이를 담은 <국경을 세번 건넌 여자, 최진이>(북하우스 펴냄)를 최근 낸 탈북시인 최진이(46)씨는 22일 요즘 생활을 묻는 물음에 ‘토플 550점’의 고민부터 털어놓는다. “북한 여성을 다룰 석사논문의 다른 자격시험은 통과했는데 영어 과목만 걸렸어요. 토플 550점 따기가 10년 전에 대학을 졸업한 뒤 영어에 손 논 내게 쉽지 않네요. 여러 매체에 쓰는 연재 칼럼들도 늘어나 생활은 더 바빠져 공부할 시간은 줄고.” 또 북한과 남한의 영어 학습체계가 달라 좀 고생이란다.

<국경을…>은 작가인 그가 남한에서 처음 낸 책이다. 책을 화제에 올리려, 한국에 정착한 1999년 11월 이전으로 시간을 돌렸다.

그는 북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시인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시적 영감은 사라지고 시보다 소설을 쓰고 싶을 정도로 내게는 너무도 드라마 같은 인생역정이었다”고 옛 일을 말한다. 그때의 지난 기억은 이젠 담담한 얼굴표정으로 살아난다.

탈북은 그의 “최고 소망”이었다. 때리는 아버지와 목숨을 끊은 어머니에 대한 불안하고 궁핍한 어린 시절의 기억, 이어 자전거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김형직사범대학 작가반에 들어가 시인의 미래를 바라보던 청년 시절의 꿈, 그러나 다시 결혼 뒤 남편의 전처 아들이 피운 말썽 때문에 평양 추방령을 당해야 했던 악몽.

%%990002%% 그는 북한에선 글 쓰는 사람이라면 ‘그 문턱이라도 베고 누우면 원이 없겠다’고 한다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시인이었고 한때 저명한 북한 문인한테서 ‘북한 문학계를 뒤바꿀 인물’이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결국 암울했던 그의 삶을 빚어놓은 북한사회를 탈출하기로 했다. 1998년 5월 첫 북한 탈출. 그는 몇 달 뒤 두고온 아들을 데려오느라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 두만강 국경을 세번 건너고 일곱 겹 철조망을 뚫는 일이 돼버렸다. “…뒤에서 암만 소리쳐도 돌아보지 말고 뛰라요! 나는 정신없이 발을 앞으로 내짚었다. 갑자기 물 속에 몸이 푹 빠져들었다. 물이 목에 찼다. …빠른 물살에 몸뚱이가 사정없이 떠내려갔다. …물살에 구겨박혀 죽든가, 일이 날 것 같았다.”(제2부)

이 책의 원고 대부분은 북한을 탈출해 머물던 중국 연변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삶을 버릴 수 없던 나는 연변에서 내 이야기를 열심히 썼지요. 그 때 썼던 분량의 3분의 2 가량을 포기하고 간추리고 남한사회에서 보낸 생활 이야기를 덧붙인 게 이 책입니다. 기회가 되면 못 다 한 얘기를 다른 책에서 하고 싶어요.”

연변에서 남쪽 책과 매체들을 탐독했던 그는 ”내가 남한 작가들에 비해 10년 정도 뒤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작가로서 10년은 더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그때 절절히 들었다”고 말한다. “남한사회에선 언어 표현이 너무 풍부한 것 같아요. 북한사회에선 언어도 경직된 분위기죠. 남한에 와서 ‘게릴라성 폭우’란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어떻게 꿈도 꾸지 못할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놀라웠죠. 북한에선 사람 특징을 묘사하는 표현들이 발달했지만….”

북한 문인과 남한 문인들은 얼마나 다를까. ”흔히 북한 문인들은 ‘아첨문학’만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남한 문학 상당부분이 ‘상업주의 문학’에 빠진, 그 만큼 그 정도만 북한 문학이 아첨문학에 빠졌을 뿐이지, 문학이 가야할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다양한 문인들도 꽤 있습니다. 북한 문학에도 다양성이 있습니다.”

북한에선 문인들이 ‘20대엔 시인, 40대엔 소설가, 60대엔 극작가’가 되고자 한다고 전하는 그는 “북한에서도 늘 했던 결심, 오십살이 되어 세상에 남을 소설 하나 쓰면 지금껏 내가 산 삶이 의미 있을 것이라고 했던 결심대로, 좋은 소설가가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다부진 마음을 드러낸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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