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지구의 동반자들

등록 2005-06-23 18:50수정 2005-06-23 18:50

 자연은 알고 있다<br>
\\
자연은 알고 있다
\\
때로는 책 말미에 정리된 ‘찾아보기’ 색인목록을 뒤적거려 보는 것으로 책의 특징을 맛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책,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생물다양성·생물자원센터 앤드루 비티 소장과 미국 스탠퍼드대학 폴 에얼릭 교수(생물학)가 함께 쓴 생물·생태학 교양서 <자연은 알고 있다>(궁리 펴냄)가 그런 예에 가깝다. 사람이 집주인인 양 행세하는 지구 행성이 실은 수많은 생물종이 함께 점유한 공유지라는 ‘현실’을 다시 환기시키는 이 책에서 갖가지 생물종 이름들이 색인목록 대부분을 차지한다.

335쪽부터 시작하는 찾아보기를 열면, 쉽게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법한 지구의 또 다른 주인들의 이름이 수두룩하게 이어진다. 본문 내용과 어울려 지구 생물종의 무궁무진한 다양성을 보여준다.

뿌리에 자라는 곰팡이의 도움을 받아 양분을 흡수하는 가문비나무­ 곰팡이는 먹고 먹히고 서로 도와주는 생태계 “자연의 인터넷“에서 “하나의 노드(연결점) 역할”을 한다. 열매 속에 살충제 성분을 머금어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피하는 미얀마의 님나무­ 독특한 천연물질을 생산하는 “화학공학자”다. 노루발풍, 개박하도 뒤지지 않는다. 암컷에 구애할 때 앞다리에서 뽑은 실로 먹이 선물을 선사하는 수컷 춤파리­ 이렇게 자연의 공장처럼 천연섬유를 만드는 동물은 거미, 나비·나방, 하루살이, 풀잠자리류, 딱정벌레류 등 의외로 많다. 생물종 이름은 쌍편모충류, 광대파리, 밀가루바구미, 물꼬마주머니쥐, 출혈나무, 코뿔새, 긴끈벌레, 말코손바닥사슴, 솔 칠면조 등등으로 이어진다.

남나무 · 춤파리 · 코뿔새…
수없이 많은 생물종이
자연에 ‘저축’돼 있다
인간은 그저 ‘대출’하며 살 뿐
생물다양성 보존 필요성 역설

사실 지구 생물종의 수는 다 헤아릴 수도 없다. 과학자들은 그 수를 때로는 1000만~2000만종, 때로는 수백만종으로 ‘추산’할 뿐이다. “우리는 우주공간에 떠 있는 이 작은 바윗덩어리를 공유하는 다른 종들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도 적다”고 지적하는 지은이들은 “(이런 무지는) 바로 인류가 진짜 지구의 지배자가 아님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제3장 ‘기본적 생존법’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고실험은 이런 ‘지구의 동반자들’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현실’임을 깨닫게 한다. 책은 ‘당신이 달에 식민지를 건설하러 떠나는 우주선의 선장이라면 무엇을 싣고 가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물음에 답하여 식용 곡물과 가축, 물고기 등을 나열하다 보면, 어느 새 가축 먹이용 작물, 나비·벌 등 꽃가루받이동물, 토양 미생물들, 해충을 물리칠 천적동물 등 “자연 인터넷”의 연결 사이트는 끊임없이 확장해 목록 길이는 한정 없이 늘어난다. 결론은 아마도 ‘우리는 모두 필요해요’가 되지 않을까.

10장 ‘야생 세계에서 얻는 청사진과 영감’, 11장 ‘자연 의약품’은 생물종들이 인간의 생활과 과학지식에 제공하는 여러 쓸모있는 자원들에 관한 이야기다.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조개껍질 구조는 새로운 세라믹 재료에 아이디어를 주고, 같은 굵기의 철사보다 수백배 강한 실을 뽑아내는 거미는 첨단섬유 연구에 기여하는 중요한 ‘공동연구자’다. 절지동물과 지렁이의 몸 구조는 로봇공학에 응용되며 수십㎞ 밖에서도 연기를 감지하는 비단벌레는 화재감지장치 연구에 도움을 준다. 또 항생·항암물질 등 새로운 천연물질의 “보물창고”가 된 미생물과 식물·곤충들은 이미 생명과학계에 “자연 의약품”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 모든 과학지식을 자연은 알고 있다.

자연을 “은행”에 비유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저축과 대출”(13장)로 설명하는 지은이들은 “모든 유전자와 생물개체들, 생물종들, 그리고 바다와 땅과 대기에 사는 모든 자연생물군들이 자연에 저축되어 있다” “생물종이 멸종하면, 자금을 보충해주는 것이나 부채를 탕감해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그들이 제공하던 서비스도 사라지는 것”이라며 생물다양성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양성 예찬은 자연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새롭게 할 만하다. ‘자연이 아름답고 값진 것은, 그 속에 너무도 다른 존재들이 서로 어울려 있기 때문’이라고.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