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자유롭고 유연한 형식·문체로
힙합에 열광하는 아이들 그려
“작가로서의 경직 풀고 싶었다”
힙합에 열광하는 아이들 그려
“작가로서의 경직 풀고 싶었다”
〈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은희경의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는 힙합 가수 키비(kebee)의 동명의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다. “언제부턴가 거울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지/ 표정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을 수 있어/ 하지만 내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편하지 않아/ 그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남자스러움 말야//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에 난 또 놀라/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 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 우리는 진짜보다 더 강한 척해야 하므로” 소설 속에서 이 노래는 주인공인 열일곱 살 소년 강연우가 전학 온 학교에서 알게 된 동급생 독고태수의 엠피스리를 통해 처음 접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노래를 들으며 연우는 ‘이건, 내 이야기잖아!’라고 생각한다. 힙합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소설에는 이 노래 말고도 <마부> <고 스페이스>(Go Space) <미스터 심드렁> <핑크 폴라로이드> 등 여러 곡의 힙합이 이야기 흐름에 맞게 삽입되어 있으며, 책 뒤에는 노래 여섯 곡을 담은 시디도 부록으로 붙어 있다. 일종의 배경음악인 셈이다. 그만큼 소설에서 힙합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연우와 태수의 우정, 연우와 이채영의 풋풋한 사랑이 싹트고 자라는 데에 힙합은 자양분이 되어 준다. 가령 연우와 채영이 심야의 공항을 찾아 자신들의 마음을 우주로 쏘아 보내는 장면에서 <고 스페이스>는 맞춘 듯이 배경에 깔린다. “난 이쯤에서 결론을 말해/ 레츠 고 스페이스(Let’s go space) 레츠 고 스페이스 레츠 고 스페이스/ 네게 가까이 다가가 저 빛을 향해 날아가/ 빛이 넘치고 넘치는 우주로 위 고나 플라이 하이(we gonna fly high)” 힙합은 연우와 타인의 관계를 매개하는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소설의 주제의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태수와 연우가 그토록 힙합에 빠져드는 것은 거기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 안에는 연우 엄마 신민아의 연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재욱 형’이 쓴 칼럼 ‘아버지, 힙합 좀 듣자니까요’ 세 편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 글들은 연우들에게 힙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힙합은 ‘나’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토해낸다는 점에서 다르다. 부모에게 미안한 감정, 실패한 연애 이야기 등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서열화된 교육제도의 모순, 승자독식의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까지, 꾸밈없이, 솔직하게, 거침없이, 때로는 생경하고 과격하게 ‘나’를 드러낸다. 힙합은 멜로디를 버리는 대신 말의 자유, 즉 이야기를 얻었다.”
이런 힙합에 열광하는 연우와 태수, 그리고 채영은 제도교육의 틀과 부모 세대의 정형화한 기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혼한 뒤 연우를 혼자 키우고 있는 엄마 신민아도 못지않다. ‘공부 잘하기 싫다’는 연우의 ‘선택’을 존중해 주며 아들이 커서 ‘한량’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 엄마, 일곱 살 연하의 애인을 거리낌없이 집에 들일 뿐만 아니라 어린 아들과 함께 셋이서 술집에도 거침없이 출입하는 이 엄마는 재욱이 칼럼에서 말한 “자신이 모르는 것이라면 일단 배척부터 하고 보는” 여느 어른과는 다른 어른이다. 소설은 그 엄마를 ‘신민아씨’라 지칭하는 연우의 독백체로 진행되는데, 그 형식과 문체 역시 힙합을 닮아 자유롭고 유연하다. 작가는 “그동안 작가로서나 인간으로서 경직돼 있던 것을 풀어 버리고 싶었다”며 “구성의 치밀함이라든지 문장의 완성도에 신경을 쓰는 대신 그냥 이야기의 흐름에 소설을 맡겼다”고 밝혔다. 작가의 말처럼, 500쪽에 육박하는 두툼한 소설은 뜻밖에도 단숨에 읽힌다. 어린 청춘들이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과하는 동안 이별과 재회, 죽음과 상실의 세상 이치를 깨달아 간다. 첫눈이 상징하는 순결과 설렘의 이미지가 소설 전편을 관류하는 가운데, 상실과 종말로 문을 열었던 소설이 회복과 희망을 암시하면서 마무리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열일곱 살 소년의 마음이 되어 글을 쓰는 게 재밌었다”는 작가는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위로받아야 할 소년”이라고 말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은희경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은희경의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는 힙합 가수 키비(kebee)의 동명의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다. “언제부턴가 거울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지/ 표정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을 수 있어/ 하지만 내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편하지 않아/ 그들이 내게 강요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남자스러움 말야//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에 난 또 놀라/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 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 우리는 진짜보다 더 강한 척해야 하므로” 소설 속에서 이 노래는 주인공인 열일곱 살 소년 강연우가 전학 온 학교에서 알게 된 동급생 독고태수의 엠피스리를 통해 처음 접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노래를 들으며 연우는 ‘이건, 내 이야기잖아!’라고 생각한다. 힙합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소설에는 이 노래 말고도 <마부> <고 스페이스>(Go Space) <미스터 심드렁> <핑크 폴라로이드> 등 여러 곡의 힙합이 이야기 흐름에 맞게 삽입되어 있으며, 책 뒤에는 노래 여섯 곡을 담은 시디도 부록으로 붙어 있다. 일종의 배경음악인 셈이다. 그만큼 소설에서 힙합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연우와 태수의 우정, 연우와 이채영의 풋풋한 사랑이 싹트고 자라는 데에 힙합은 자양분이 되어 준다. 가령 연우와 채영이 심야의 공항을 찾아 자신들의 마음을 우주로 쏘아 보내는 장면에서 <고 스페이스>는 맞춘 듯이 배경에 깔린다. “난 이쯤에서 결론을 말해/ 레츠 고 스페이스(Let’s go space) 레츠 고 스페이스 레츠 고 스페이스/ 네게 가까이 다가가 저 빛을 향해 날아가/ 빛이 넘치고 넘치는 우주로 위 고나 플라이 하이(we gonna fly high)” 힙합은 연우와 타인의 관계를 매개하는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소설의 주제의식을 대변하기도 한다. 태수와 연우가 그토록 힙합에 빠져드는 것은 거기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 안에는 연우 엄마 신민아의 연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재욱 형’이 쓴 칼럼 ‘아버지, 힙합 좀 듣자니까요’ 세 편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 글들은 연우들에게 힙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은희경 작가
이런 힙합에 열광하는 연우와 태수, 그리고 채영은 제도교육의 틀과 부모 세대의 정형화한 기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혼한 뒤 연우를 혼자 키우고 있는 엄마 신민아도 못지않다. ‘공부 잘하기 싫다’는 연우의 ‘선택’을 존중해 주며 아들이 커서 ‘한량’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 엄마, 일곱 살 연하의 애인을 거리낌없이 집에 들일 뿐만 아니라 어린 아들과 함께 셋이서 술집에도 거침없이 출입하는 이 엄마는 재욱이 칼럼에서 말한 “자신이 모르는 것이라면 일단 배척부터 하고 보는” 여느 어른과는 다른 어른이다. 소설은 그 엄마를 ‘신민아씨’라 지칭하는 연우의 독백체로 진행되는데, 그 형식과 문체 역시 힙합을 닮아 자유롭고 유연하다. 작가는 “그동안 작가로서나 인간으로서 경직돼 있던 것을 풀어 버리고 싶었다”며 “구성의 치밀함이라든지 문장의 완성도에 신경을 쓰는 대신 그냥 이야기의 흐름에 소설을 맡겼다”고 밝혔다. 작가의 말처럼, 500쪽에 육박하는 두툼한 소설은 뜻밖에도 단숨에 읽힌다. 어린 청춘들이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과하는 동안 이별과 재회, 죽음과 상실의 세상 이치를 깨달아 간다. 첫눈이 상징하는 순결과 설렘의 이미지가 소설 전편을 관류하는 가운데, 상실과 종말로 문을 열었던 소설이 회복과 희망을 암시하면서 마무리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열일곱 살 소년의 마음이 되어 글을 쓰는 게 재밌었다”는 작가는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위로받아야 할 소년”이라고 말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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