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산의 철학사상’ 영역본 펴낸 김신자 박사
30년 오스트리아서 공부·강의
다산철학 비교·분석 현지 ‘호평’
‘비엔나 철학 총서’에도 포함돼 “결과적으로 보면, 제 한쪽 눈과 이 책을 맞바꾼 셈이죠.” 지난 2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신자(68·사진) 박사는 왼쪽 눈을 크게 뜨고 안경 너머로 자신의 독일어 저서 <정다산의 철학사상> 영역본을 펼쳐 훑어봤다. 가늘게 뜬 오른쪽 눈은 이미 실명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영어권에 알려지게 됨으로써 다산 세계화에 또 한발을 내디뎠다”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자부심이 담겼다. 1979년 독일에서 객원교수로 초청받은 남편(미술사 전공)을 따라 건너간 그는 89년 남편이 4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공부를 계속해 95년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예술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로 그는 2년 전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줄곧 빈대학에서 비교철학 강의를 하며 30년간 재외 한국학자로 활약해왔다. 고대에서 서양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가 왜 서양 학문의 본고장까지 가서 하필 다산 정약용을 공부했을까? “너만 할 수 있는 학문을 하라”는 빈 대학 지도교수의 조언에 따라 동양철학, 특히 한국의 철학에 주목한 그는 정약용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엇보다 다산의 지적 활동은 그 범위가 넓습니다. 또 그의 사상 속에는 유학·동양철학·천주교 등 다양한 배경이 흐르고 있어요.” 야스퍼스, 루소, 로크 등 대표적인 서양 사상가들과 다산을 비교하는 그의 연구 작업은 현지 학계에서 폭넓은 관심을 얻었고 99년에는 국내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다산 관련된 저술을 위한 지원금까지 받았다. 그때 액운이 닥쳤다. 그해 8월 목욕탕에서 넘어지며 오른쪽 눈을 크게 다친 것이다. 세 차례나 수술을 한 끝에 실명 위기를 넘겼고, 의사는 “잘 관리하면 평소대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독일어로 글을 쓰기 위해 사전을 8개씩 펼쳐놓고 하루에 10시간씩 공부를 했고” 결국 눈의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2006년 독일어로 쓴 <정다산의 철학사상>을 완성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 출판사인 ‘페터랑’이 발행하는 ‘빈(비엔나) 철학총서’ 제14권으로 출간됐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의 눈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후회는 없습니다. 국가에서 해도 힘겨운 일을 혼자 해냈다는 자부심도 크고요.” 그의 저술은 다산에 대한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본격적인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서양 학계에서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페터랑 출판사는 곧바로 영역을 제의했고, 오스트리아 학술진흥재단(FWF)과 한국 다산학술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은 영역본이 지난 10월 말 나온 것이다. “재외학자들은 한국과 세계의 학문을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할 수 있는데, 한국 학계는 이를 아예 무시하고 있다”고 꼬집은 그는 “재외학자, 외국학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야 한국 학문도 널리 알리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다산철학 비교·분석 현지 ‘호평’
‘비엔나 철학 총서’에도 포함돼 “결과적으로 보면, 제 한쪽 눈과 이 책을 맞바꾼 셈이죠.” 지난 2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신자(68·사진) 박사는 왼쪽 눈을 크게 뜨고 안경 너머로 자신의 독일어 저서 <정다산의 철학사상> 영역본을 펼쳐 훑어봤다. 가늘게 뜬 오른쪽 눈은 이미 실명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영어권에 알려지게 됨으로써 다산 세계화에 또 한발을 내디뎠다”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자부심이 담겼다. 1979년 독일에서 객원교수로 초청받은 남편(미술사 전공)을 따라 건너간 그는 89년 남편이 4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공부를 계속해 95년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예술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로 그는 2년 전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줄곧 빈대학에서 비교철학 강의를 하며 30년간 재외 한국학자로 활약해왔다. 고대에서 서양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가 왜 서양 학문의 본고장까지 가서 하필 다산 정약용을 공부했을까? “너만 할 수 있는 학문을 하라”는 빈 대학 지도교수의 조언에 따라 동양철학, 특히 한국의 철학에 주목한 그는 정약용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엇보다 다산의 지적 활동은 그 범위가 넓습니다. 또 그의 사상 속에는 유학·동양철학·천주교 등 다양한 배경이 흐르고 있어요.” 야스퍼스, 루소, 로크 등 대표적인 서양 사상가들과 다산을 비교하는 그의 연구 작업은 현지 학계에서 폭넓은 관심을 얻었고 99년에는 국내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다산 관련된 저술을 위한 지원금까지 받았다. 그때 액운이 닥쳤다. 그해 8월 목욕탕에서 넘어지며 오른쪽 눈을 크게 다친 것이다. 세 차례나 수술을 한 끝에 실명 위기를 넘겼고, 의사는 “잘 관리하면 평소대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독일어로 글을 쓰기 위해 사전을 8개씩 펼쳐놓고 하루에 10시간씩 공부를 했고” 결국 눈의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2006년 독일어로 쓴 <정다산의 철학사상>을 완성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 출판사인 ‘페터랑’이 발행하는 ‘빈(비엔나) 철학총서’ 제14권으로 출간됐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의 눈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후회는 없습니다. 국가에서 해도 힘겨운 일을 혼자 해냈다는 자부심도 크고요.” 그의 저술은 다산에 대한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본격적인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서양 학계에서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페터랑 출판사는 곧바로 영역을 제의했고, 오스트리아 학술진흥재단(FWF)과 한국 다산학술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은 영역본이 지난 10월 말 나온 것이다. “재외학자들은 한국과 세계의 학문을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할 수 있는데, 한국 학계는 이를 아예 무시하고 있다”고 꼬집은 그는 “재외학자, 외국학자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야 한국 학문도 널리 알리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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