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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희망’을 위해 들춰낸 무거운 현실

등록 2010-12-03 21:39수정 2010-12-03 21:44

<박순미 미용실>
<박순미 미용실>
<박순미 미용실>
더 작가 글·그림/한겨레아이들·9000원

강제철거·외국인노동자 등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들
직접 맞닥뜨린 ‘솔직한 동화’

놀이터와 삶터를 강제철거로 빼앗기는 아이들, ‘불법체류자’ 꼬리표를 달고 욕을 이름처럼 듣고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동네에 사는 아이들…. 이미 세상의 부조리함과 폭력을 보고 만 아이들에게 ‘착한 동화’는 유효할까. 그 아이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어떨까. 세상은 동화가 아닌데, ‘착하면 복 받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은 정말 안전한가.

어린이책 세계의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더작가) 370여명이다. 2008년 12월,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들이 해직된 사건을 계기로 뭉쳤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기륭전자 파업 같은 사회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냈고, 그 문제의식을 어린이책에 담기 위해 노력해왔다. 더작가의 첫 작품집 <박순미 미용실>이 한겨레아이들에서 나왔다. 동화 일곱편과 만화 한편, 그리고 회원 50명의 ‘평화 한줄 쓰기’가 실렸다.


표제작 ‘박순미 미용실’(박효미 글·정문주 그림)의 희용이는 철거촌에 산다. ‘학교 숙제’에 등 떠밀려 만들어진 희용이네 가훈은 ‘노력’이다. 희용 엄마 박순미씨는 “노력해서 번듯한 미용실을 하게 됐고,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주먹까지 불끈 쥐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철거바람이 닥친다. 재개발이 뭔지 묻는 딸에게, 엄마는 “동네가 더러워서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거”라고 말해준다. 이사 가기 싫은 희용이는 이웃들이 떠나 개똥과 벌레, 쓰레기만 남은 동네 골목을 깨끗이 청소한다. 하지만 가진 자의 불도저 같은 탐욕 앞에 순수한 동심은 꽃피울 자리가 없다. 노력으로 삶의 터전을 일군 엄마도 고개를 떨군다. 엄마는 말을 바꾼다. “노력도 중요한데, 꿋꿋하게 사는 것도 중요해.”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에서 꿋꿋함이라도 잃지 않아야 버틸 수 있다는 슬픈 독백이다.

<박순미 미용실>
<박순미 미용실>

최덕규의 만화 ‘쪽방 할아버지’엔 그렇게 철거촌에서 밀려나 쪽방촌에 자리를 잡은 쓸쓸한 노년이 등장한다. 정부에서 받은 라면을 소주로 바꿔 먹는 ‘어르신’은 한때 철거촌에 사는 가장이었다. 하지만 거리로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술로 달래다 아내와 딸을 잃는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780여개 쪽방. 화려한 도시의 깊은 그늘은 그렇게 외롭고 작은 섬을 만들어냈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세상, 노력이 짓밟히는 세상, 아이들은 어디서 희망의 답을 찾아야 할까. 이 책에서는 ‘겁없는 민주주의’(김하늘 글·장호 그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6학년 공모환이 다니는 학교는 ‘사교육 없는 학교’ 시범학교로 선정된다. 선생님은 “그래서 다음달부터 한시간씩 더 방과후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학교가 학원이 되는 불합리함, 그러면서도 “나라에서 돈을 주는 것이므로 학원이 아니다”라는 강변. 아이들의 이성도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때 ‘따따쟁이’ 공모환이 따따부따 나선다. ‘사교육 없는 학교 반대 서명’을 받아 제출한 것이다. 공모환 덕분에 방과후 공부는 30분 줄고, 방과후 특별활동이 생긴다.

‘해맑은 동심’을 북돋워주기에 좀 무겁고 치열한 어린이책이다. 하지만 ‘현실’은 꽁꽁 숨겨둔다고 영원히 열리지 않을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다. 언제고 맞닥뜨리게 될 이 세계의 문제를 조금 일찍, 잘 접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홀로 남겨진 ‘희망’을 구해낼 존재가 바로 우리 아이들 아닌가. 초등 4학년 이상.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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