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자의 하인
강지영(32)의 장편 <엘자의 하인>은 그가 지난 1년 반 사이에 펴낸 네권째 소설책이다. 지난해 7월 첫 소설집 <굿바이 파라다이스>를 묶어 내고 불과 두달 만에 첫 연작장편 <신문물검역소>를 선보였으며, 올해 3월 두번째 장편 <심여사는 킬러>를 출간한 데 이어 해가 저물기 전에 세번째 장편 <엘자의 하인>까지 저서 목록에 보탰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소설도 써 보았지만 학교 안팎에서 별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다지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졸업 뒤 사회에 나와서 출판사와 광고대행사, 기업 홍보실 등에서 카피라이터와 마케터 등으로 일하며 10년 정도를 보낸 어느 날 문득 다시 소설을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서른을 넘어가면서 다시 사춘기가 왔던 것 같았다”고. “일단 한 줄을 써 보니까 나머지 문장들도 술술 풀려나오더라구요. 마치 작은 실밥 하나를 통해 실뭉치 전체가 풀려나오는 것처럼요.” 이런저런 웹진에서 인기 작가로 활약하는 한편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한국 스릴러 문학 단편선> 같은 선집에 작품을 발표했다. 그렇게 쓰고 발표한 공포물과 판타지, 추리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들이 <굿바이 파라다이스>에 묶였다.
<신문물검역소>는 또다른 시도였다. 텔레비전 퓨전 사극을 연상시키는 이 소설은 조선 시대 제주도를 배경으로, 귀화한 네덜란드인 박연과 외래 문물을 조사하는 기관 ‘신문물검역소’ 관리들을 등장시켜 불아자(브래지어), 치설(칫솔), 곤도미(콘돔), 코길이(코끼리) 같은 신문물을 처음 접한 조선 사람들의 당혹과 충격을 유쾌한 필치에 담았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던 칼솜씨로 킬러가 된 평범한 주부의 이야기를 다룬 <심여사는 킬러>까지 강지영의 상상력은 럭비공이 튀듯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나갔다.
그렇게 장르문학계에서 주목받는 ‘무서운 신인’으로 통하던 그가 영화 주간지 <씨네21>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낸 <엘자의 하인>은 그간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추리나 공포, 판타지 같은 장르의 문법을 벗어던진, 정통 성장소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소설은 도시 개발 이전의 경기도 파주를 배경으로 열두살 소년 양하인의 성장을 그린다. 남자 같은 엄마와 여자 같은 아빠, 그리고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하인의 집 사랑채에 또래의 혼혈 소녀 엘자 모녀가 이사를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양배추인형처럼 크고 푸른 눈동자”를 지닌 엘자에게 하인은 단박에 매료된다. 햇빛을 쬐면 피부에 반점이 생기고 빈혈 증세를 보이는 희귀병에 걸린 엘자에게 양산과 모자,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다. 하인은 그런 엘자의 가방을 들어주고 양산을 받쳐주는 등 그야말로 하인 노릇을 제대로 한다. 역시 엘자를 연모하는 단짝 친구 종선을 견제하면서 마침내 입맞춤(?)에 성공하지만, 엘자가 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하인의 풋풋한 첫사랑도 막을 내린다. 작가는 두 주인공 하인과 엘자, 그리고 하인의 부모님과 외할머니 같은 주요 인물들만이 아니라 엘자 엄마 스텔라를 짝사랑하는 노총각 광섭이 아저씨, 하인의 친구인 종선과 옥선, 동네의 수재 수동이 형과 건달 아저씨들 같은 주변 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 역시 생생하게 살리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복선과 유머를 적절히 배치해 독서의 재미를 유지하는가 하면 드렁조, 넨다하다, 굴침스럽다, 듣그럽다 같은 순우리말 어휘를 적극적으로 살려 쓰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성장소설은 꼭 한번 써 보고 싶었어요. 이 소설은 제 고향 파주와 저 자신의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보였던 단점도 보완하고자 많이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아직도 더 나아가야 할 지표 같은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저에게는 의미 깊은 작품입니다.” 2년 동안 네권의 책을 내놓는 놀라운 생산성의 비밀은 꾸준하고 규칙적인 글쓰기 습관이라고 소개했다. “잘 써지든 안 써지든 하루에 원고지 20장, 주 5일 근무”가 그가 지키는 집필 리듬. “장르소설과 본격소설 중 어느 한쪽만 고집하지는 않고 다양하고 자유롭게 쓰려 한다”는 작가는 “일단 책을 펴 들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강지영 지음/씨네21북스·1만2000원
그렇게 장르문학계에서 주목받는 ‘무서운 신인’으로 통하던 그가 영화 주간지 <씨네21>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낸 <엘자의 하인>은 그간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무엇보다 추리나 공포, 판타지 같은 장르의 문법을 벗어던진, 정통 성장소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소설은 도시 개발 이전의 경기도 파주를 배경으로 열두살 소년 양하인의 성장을 그린다. 남자 같은 엄마와 여자 같은 아빠, 그리고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하인의 집 사랑채에 또래의 혼혈 소녀 엘자 모녀가 이사를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양배추인형처럼 크고 푸른 눈동자”를 지닌 엘자에게 하인은 단박에 매료된다. 햇빛을 쬐면 피부에 반점이 생기고 빈혈 증세를 보이는 희귀병에 걸린 엘자에게 양산과 모자,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다. 하인은 그런 엘자의 가방을 들어주고 양산을 받쳐주는 등 그야말로 하인 노릇을 제대로 한다. 역시 엘자를 연모하는 단짝 친구 종선을 견제하면서 마침내 입맞춤(?)에 성공하지만, 엘자가 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하인의 풋풋한 첫사랑도 막을 내린다. 작가는 두 주인공 하인과 엘자, 그리고 하인의 부모님과 외할머니 같은 주요 인물들만이 아니라 엘자 엄마 스텔라를 짝사랑하는 노총각 광섭이 아저씨, 하인의 친구인 종선과 옥선, 동네의 수재 수동이 형과 건달 아저씨들 같은 주변 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 역시 생생하게 살리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복선과 유머를 적절히 배치해 독서의 재미를 유지하는가 하면 드렁조, 넨다하다, 굴침스럽다, 듣그럽다 같은 순우리말 어휘를 적극적으로 살려 쓰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성장소설은 꼭 한번 써 보고 싶었어요. 이 소설은 제 고향 파주와 저 자신의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보였던 단점도 보완하고자 많이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아직도 더 나아가야 할 지표 같은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저에게는 의미 깊은 작품입니다.” 2년 동안 네권의 책을 내놓는 놀라운 생산성의 비밀은 꾸준하고 규칙적인 글쓰기 습관이라고 소개했다. “잘 써지든 안 써지든 하루에 원고지 20장, 주 5일 근무”가 그가 지키는 집필 리듬. “장르소설과 본격소설 중 어느 한쪽만 고집하지는 않고 다양하고 자유롭게 쓰려 한다”는 작가는 “일단 책을 펴 들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