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집>
70년대 몰아친 개발광풍 앞에
집잃고 내몰린 일가족 수난사
오늘날 용산의 아픔 새록새록
집잃고 내몰린 일가족 수난사
오늘날 용산의 아픔 새록새록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
황선미 지음/사계절·9000원 황선미(48·사진)라는 이름 앞에 굳이 군더더기 형용은 필요치 않을 수 있다. 그는 우리 어린이문학의 텃밭을 깊게 갈아엎어 살찌워온 ‘미더운 쟁기’다.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2000)과 <나쁜 어린이 표>(1999). 독자들의 진한 사랑의 증표라 할 ‘100쇄’를 넘긴 작품을 둘씩이나 품고 있는 단 두 명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어린이문학의 개척자 고 권정생.) 장편소설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은 유난히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이 겨울에, 작가 황선미가 들려주는 유년의 집 이야기다. 이 동화작가가 처음으로 펴내는 청소년소설인데, 새마을운동으로 집을 잃어버렸던 가족의 이야기다. “만약 (청소년문학을) 시작한다면 어릴 적 이 이야기부터 하고 싶었죠. 집 얘기, 가족 얘기 하면 되겠구나. 한 번 더 시작한달까. 쓰는 것에 대한 반성을 내 유년의 이야기로 하고 싶었어요. 가족 이야기와 시대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별개가 아니지요.”(황선미)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광기처럼 번득이며 가난이 덕지덕지한 동네 골목을 휘몰아치던 경기도 평택의 작은 마을 ‘객사리’다. 여섯 살에 고향(충남 홍성)을 떠난 작가는 미군부대가 이웃마을에 있는, 이 객사리에서 유년을 보냈다. 자전적 경험이 짙게 서린 이 소설에서 작가의 분신은 ‘가난한 집’의 맏딸, 11살 초등 4학년생 연재다.
돈이 생길 때만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와, 아버지 대신 생계를 짊어지고 장터에서 막내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끊임없이 ‘생선 사세요’를 외치는 그악스런 어머니. 그런 “엄마가 부끄러워서 어디를 봐야 할지 몰랐던” 우리의 연재는 이 부부가 5남매 중 큰아들 연후 뒤로 낳은 큰딸이다.
소설은 외삼촌이 이 집 “새끼들 마지막 목숨줄”이던 쌀양식 수십 가마니를 털어먹는 바람에, 그나마 세 들어 살던 ‘객사1리’의 단칸방 세를 감당키 어려워, 그예 외삼촌이 사는 ‘객사2리’로 이사가면서 시작된다. 이삿날에도 장터로 일을 나가는 어머니. 이삿짐을 옮기는 건 고스란히 11살 연재와 13살 연후의 몫이다. 막내를 들쳐 업고 별다른 가구 하나 없는 궤짝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고픈 배를 참으며 찾아간 곳은 그 마을에서도 “가장 허름한 초가집”이다. 그 외삼촌 집도 기실은 재순이를 비롯한 외사촌들이 이모할머니라 부르는 영식할머니의 집이었으니, 외삼촌네가 세든 집에 연재네 일곱 가족이 다시 구석방 하나를 얻어 살게 된 것이다.
가난한 뜨내기들이 아등바등 모여 사는 객사리의 아이들은 저마다 살기 위해 모지락스럽기 그지없는데, 미군 트럭을 뽀얀 먼지와 함께 쫓아가며 “기브 미, 쪼꼬레!”를 외치는 아이들과 ‘초가지붕 없애기, 화투 없애기, 마을길 넓히기’를 앞세운 70년대 새마을운동의 광기가 새마을웅변대회에서 초등생들에게 영광의 상장을 수여하랴, 색시집을 오가랴, 새마을운동 실천하랴 바쁜 군수님 등을 통해 촘촘하게 소묘된다. 그해 겨울 연재네 가족은 거리를 불바다로 만들며 초가지붕을 뜯어내 불을 지른 군수님 덕분에, 또다시 집을 잃고 한겨울에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가족은 부서진 초가집 대신 가느다란 각목을 잇대어 키만 껑충한 꺽다리집을 짓지만 “집요하게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온가족이 불안한 꿈을 꾸며 웅크린 채 뒤척이던” 그 밤에 아버지는 얼굴이 마비되고 만다. “꺽다리집은 너무 추워. 추워서 뼈가 아파.” 미군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연재의 손끝이 만지고 만 “뻣뻣한 종이에 둘둘 말린” 차갑고 물컹한 죽은 무엇, 과수원 사과무덤에 버려진 어린아이의 알몸은 병직이 삼촌이 들려줬던 “잡아먹거나 잡아먹히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던 그 ‘들개’들의 시대에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을 이루던 죽음들이다. 새마을운동 반대 글귀가 씌어진 벽보에서 맡았던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던 방에서 병직이 삼촌은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국어사전을 연재에게 건네고는 그 마을을 떠난다. “살갗이 발갛게 벗겨진 채 버려진 어린아이”를 보고는 며칠씩 앓으면서도 이를 앙다물고 ‘잡아먹히진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자아이 ‘연재’의 초상은 이 소설의 핍진하고 강인한 뼈대를 이룬다. 연재의 손등을 피맺히게 할퀴던 재순과의 화해, 얼굴이 마비된 아버지를 치료하려고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구하러 다니는 객사리 아이들의 모습은, 심술궂은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 한 이불 속에서 몸뚱이로 온기를 나누며 삶을 버텨온 연재와 우리네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꾸밈없이 간결하게 솟구치는 문장으로 채워진 이 성장소설은 독자에게 아픔과 통증을 요구한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은 아마도 우리 문학에 ‘온기 가득한 집’과도 같은 작품으로 새겨질 것이다. 저 1970년대의 혹독한 가난과 추위가 2010년 오늘, 평택 대추리와 용산과 뉴타운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여전히 휘몰아친다. 이 소설이 지나간 연대의 소묘로 읽히지 않는 이유다.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황선미 지음/사계절·9000원 황선미(48·사진)라는 이름 앞에 굳이 군더더기 형용은 필요치 않을 수 있다. 그는 우리 어린이문학의 텃밭을 깊게 갈아엎어 살찌워온 ‘미더운 쟁기’다.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2000)과 <나쁜 어린이 표>(1999). 독자들의 진한 사랑의 증표라 할 ‘100쇄’를 넘긴 작품을 둘씩이나 품고 있는 단 두 명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어린이문학의 개척자 고 권정생.) 장편소설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은 유난히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이 겨울에, 작가 황선미가 들려주는 유년의 집 이야기다. 이 동화작가가 처음으로 펴내는 청소년소설인데, 새마을운동으로 집을 잃어버렸던 가족의 이야기다. “만약 (청소년문학을) 시작한다면 어릴 적 이 이야기부터 하고 싶었죠. 집 얘기, 가족 얘기 하면 되겠구나. 한 번 더 시작한달까. 쓰는 것에 대한 반성을 내 유년의 이야기로 하고 싶었어요. 가족 이야기와 시대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별개가 아니지요.”(황선미)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광기처럼 번득이며 가난이 덕지덕지한 동네 골목을 휘몰아치던 경기도 평택의 작은 마을 ‘객사리’다. 여섯 살에 고향(충남 홍성)을 떠난 작가는 미군부대가 이웃마을에 있는, 이 객사리에서 유년을 보냈다. 자전적 경험이 짙게 서린 이 소설에서 작가의 분신은 ‘가난한 집’의 맏딸, 11살 초등 4학년생 연재다.
황선미 작가
가난한 뜨내기들이 아등바등 모여 사는 객사리의 아이들은 저마다 살기 위해 모지락스럽기 그지없는데, 미군 트럭을 뽀얀 먼지와 함께 쫓아가며 “기브 미, 쪼꼬레!”를 외치는 아이들과 ‘초가지붕 없애기, 화투 없애기, 마을길 넓히기’를 앞세운 70년대 새마을운동의 광기가 새마을웅변대회에서 초등생들에게 영광의 상장을 수여하랴, 색시집을 오가랴, 새마을운동 실천하랴 바쁜 군수님 등을 통해 촘촘하게 소묘된다. 그해 겨울 연재네 가족은 거리를 불바다로 만들며 초가지붕을 뜯어내 불을 지른 군수님 덕분에, 또다시 집을 잃고 한겨울에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가족은 부서진 초가집 대신 가느다란 각목을 잇대어 키만 껑충한 꺽다리집을 짓지만 “집요하게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온가족이 불안한 꿈을 꾸며 웅크린 채 뒤척이던” 그 밤에 아버지는 얼굴이 마비되고 만다. “꺽다리집은 너무 추워. 추워서 뼈가 아파.” 미군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연재의 손끝이 만지고 만 “뻣뻣한 종이에 둘둘 말린” 차갑고 물컹한 죽은 무엇, 과수원 사과무덤에 버려진 어린아이의 알몸은 병직이 삼촌이 들려줬던 “잡아먹거나 잡아먹히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던 그 ‘들개’들의 시대에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을 이루던 죽음들이다. 새마을운동 반대 글귀가 씌어진 벽보에서 맡았던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던 방에서 병직이 삼촌은 세상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국어사전을 연재에게 건네고는 그 마을을 떠난다. “살갗이 발갛게 벗겨진 채 버려진 어린아이”를 보고는 며칠씩 앓으면서도 이를 앙다물고 ‘잡아먹히진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자아이 ‘연재’의 초상은 이 소설의 핍진하고 강인한 뼈대를 이룬다. 연재의 손등을 피맺히게 할퀴던 재순과의 화해, 얼굴이 마비된 아버지를 치료하려고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구하러 다니는 객사리 아이들의 모습은, 심술궂은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 한 이불 속에서 몸뚱이로 온기를 나누며 삶을 버텨온 연재와 우리네 가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꾸밈없이 간결하게 솟구치는 문장으로 채워진 이 성장소설은 독자에게 아픔과 통증을 요구한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은 아마도 우리 문학에 ‘온기 가득한 집’과도 같은 작품으로 새겨질 것이다. 저 1970년대의 혹독한 가난과 추위가 2010년 오늘, 평택 대추리와 용산과 뉴타운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여전히 휘몰아친다. 이 소설이 지나간 연대의 소묘로 읽히지 않는 이유다.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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