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예순살 아들의 애잔한 시병일기

등록 2011-01-21 18:35

아흔개의 봄
아흔개의 봄
1월 22일 잠깐독서
아흔개의 봄

어머니가 돌아왔다. 2년 넘게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서 튜브로 음식을 받아먹으며 의식도 절로 사위어가는 듯했던 어머니가 어느 날 튜브를 걷어냈다. “야, 달다. 너무 달다. 더 먹자꾸나.” 숟가락을 되찾은 어머니는 과일즙에 황홀해하며 아흔살의 눈으로 혀로 세상을 다시 맛본다. <아흔개의 봄>은 퇴행성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며 써내려간 예순살 아들 김기협의 시병기다.

어머니가 누구인가. 한국전쟁 중 남편이 갑작스럽게 괴한의 총에 맞아 세상을 뜬 뒤 혼자서 네 자녀를 키우며 꼿꼿하게 학문과 생활을 지켜오던 어문학자 이남덕 전 이화여대 교수다. 아버지 역사학자 김성칠 교수가 남긴 유고를 36년 만에 <역사 앞에서>라는 이름으로 출간할 때까지 자식들에게까지 그런 유고가 있다는 사실을 감쪽같이 숨겨왔던 어머니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자마자 돌연 2년 동안 외국으로만 쏘다녔던 어머니다. 아버지를 이어 역사학자로 살며 <밖에서 본 한국사> 같은 책들을 써온 아들은 수십년 동안 그분의 훌륭한 점보다 그분의 모순과 위선을 더 많이 생각하며 살아왔노라고, 어머니가 무기력하게 누워 있게 되면서 비로소 시비지심이 사그라졌노라고 고백한다.

다시 돌아온 어머니는 예전 모습을 찾아가면서도 전과는 영 다른 사람이다. 아들을 똥강아지라고 부르며 기저귀를 다독이던 어머니가 이제는 아들에게 글자를 묻고 걸음마를 배운다. 어머니와 화해하고서야 자신과 세상과 화해할 길을 얻은 아들이 화답한다. 아들과 어머니가 이제는 생각이 한가지다. 김기협 지음/서해문집. 1만2900원.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