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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놀이하는 인간’…쉬운 게 아니군요

등록 2011-01-28 19:21수정 2011-01-28 20:09

미국 디즈니랜드 전경. 디즈니랜드가 준비한 놀이는 우리에게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준다. 그렇지만 그곳을 나오는 순간, 환상은 끝이 난다.   사계절 제공
미국 디즈니랜드 전경. 디즈니랜드가 준비한 놀이는 우리에게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준다. 그렇지만 그곳을 나오는 순간, 환상은 끝이 난다. 사계절 제공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노명우 글/사계절·1만2000원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재구성
창조적 놀이정신 되찾으려면
시장지배·교환관계 벗어나야
아마, 다들… 놀고 싶을 거다. 여행이든, 노래든, 운동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노는 상상’을 하다 보면, ‘이럴 시간에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하는 자책감이 들기 십상이다. 당연하다. 개미처럼 일해야 하고 베짱이처럼 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호모 파베르’(만드는 사람)의 교육환경 속에서 자랐으니까. 이렇게 놀고 싶은 욕망과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가 충돌할 때 “인간의 본원적 특징은 사유나 노동이 아니라 놀이다”라는 말은 얼마나 매력적인 위안으로 다가오는지.

20세기의 사상가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는 그런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는 호모 파베르가 지배하는 세계를 비판했다. 나아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를 통해 ‘놀 줄 모르는 병든 근대’의 탈출구를 제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일반 독자가 읽기엔 상당히 학술적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노명우 아주대 교수가 하위징아의 책을 쉬운 사례와 해설로 재구성한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를 펴냈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노명우 글/사계절·1만2000원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노명우 글/사계절·1만2000원
호모 루덴스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놀이’에 운명과 목숨을 걸었으며, 명예와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런 과잉이 문명을 만들었다. 피라미드가 단지 기능적인 무덤이었다면, 그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피라미드에는 사유나 노동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 있다. 하위징아는 그것이 놀이라고 생각했다. 밥을 담고, 몸을 가리는 기능 이상을 원한 호모 루덴스의 열정이 도자기와 패션을 만들었다.

과거의 사례들을 보면, 현재의 우리는 호모 루덴스와 교차점을 찾기가 힘들어 보인다. ‘놀이정신’은 왜 사라진 걸까? 19세기는 대전환의 시대였다. 유럽 대부분 나라가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했다. 명예와 아름다움을 위한 놀이 경쟁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전쟁으로 바뀌었다. 호모 파베르는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간형이었다. 하위징아는 이를 놀이정신의 쇠퇴로 읽었다. 나치즘은 떼지어 저급한 행동을 일삼는 타락한 놀이정신의 대표 사례였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는 <호모 루덴스>의 단순한 해설서이기를 거부한다. 호모 루덴스를 통해 19세기를 ‘진보가 아닌 퇴행’으로 비판한 하위징아의 문제의식은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하지만, 소수 귀족만 누렸던 놀이정신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린 ‘귀족적 시각’은 반대한다.

현대 사회에서 놀이는 신분적 특권이 아니라, 노동 이외의 시간에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다. 그렇다고 현대인들이 퇴근 후 자유시간에 과거 호모 루덴스들의 놀이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현대 세계에는 노래방·놀이공원처럼 ‘잘 짜인 놀이 세계’를 돈 받고 파는 서비스가 성행한다. 진정한 놀이라기보다는 노동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이며, 호모 파베르라는 자각을 잠시 잊게 하는 마취제일 뿐이다.

지은이는 시장의 일방적 지배, 교환관계를 바로잡아야 호모 루덴스의 귀환도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리눅스의 ‘오픈 소스’ 운동이나 위키피디아 같은 디지털 세계의 놀이에서 변화와 희망의 단서를 찾았다. 지식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분화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 숨어 있는 오타쿠, 고수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해 사회와의 연결망을 만들고, 이를 통해 놀이가 일상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고등학생 이상.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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