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오뉴월 불가락지
최인호 지음/시문학사·9000원
그해 오뉴월 불가락지
최인호 지음/시문학사·9000원
시인이자 기자 최인호의
일상과 역사에 관한 사유
최인호 지음/시문학사·9000원
시인이자 기자 최인호의
일상과 역사에 관한 사유
최인호(59)의 시집 <그해 오뉴월 불가락지>는 크게 세 덩어리로 이루어졌다. 표제작인 장시 <그해 오뉴월 불가락지>와 마흔한 편의 <공덕동에서> 연작, 그리고 ‘다리’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인 48편의 시가 그것이다.
“세상은 강건너 저편/ 건넛마을 건넛산 보기// 아침저녁 산그늘 내리는/ 저마다 건넛마을 바라기// 이건너 저건너 감아 떠돌다/ 돌아와 건넛마을 바라기// 오늘은 장대비/ 황톳물 닥쳐 구르는 다리에 서서”(<다리> 전문)
시집 맨 앞에 실린 이 시는 이 시인이 삶과 문학을 대하는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에게 삶과 문학이란 건넛마을과 건넛산을 바라보는 일이다. 여기저기를 떠돌며 구경하고 때로 참견하는 적도 있겠지만, 결국은 돌아와 다시 “건넛마을 바라기”가 고작 그의 몫이다. 그럼에도 이 시가 태평스럽고 무책임한 관조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마지막 연 덕분이다. 장대비가 내리고 황톳물이 닥쳐 구르는 다리에 서 있는 그는 아무래도 세상에 대한 근심과 염려를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시인이 근무하는 신문사의 주소지를 표제로 삼은 <공덕동에서> 연작은 일상과 역사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자신의 삶에 대한 다양한 관찰과 사유를 담았다.
“임들의 삶과 죽음을 보고 듣고/ 때로는 내 삶과 죽음을 얘기한다/ 임이 먼저이자 이웃이요 남이며 겨레여서/ 그들 얘기로 오늘을 사는, 이런 삶은 무엇인가?/ 돌아보아 나날은 엄정하고 쉼없이 도는데, 따라잡지 못하고 뒤집지 못하면서 닳아간다”(<공덕동에서·1> 앞부분)
이 시의 뒷부분에서 시인은 “그것이 일상이라면 달리 값질 것 없으리/ 그것으로 가락지 벼릴 일”이라고 자못 체념투로 토로하는데, 그 일상을 벼린 결과로서 2008년 여름 촛불시위의 경과를 노래한 작품이 표제 장시 <그해 오뉴월 불가락지>다. “비롯하되 비롯함이 없는/ 끝이되 다함이 없는/(…)/ 사라지되 사라짐 없는” 촛불의 체험은 그에게 지워지지 않을 화인(火印)을 남겼다. 그러나 이제 촛불도 꺼지고 그 자신 다니던 신문사에서 정년을 맞은 시인은 적막과 동무해야 할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언제나처럼 적막 속으로 한 사내가 간다 적막과 사내는 일행이 되어 도시로 간다 그곳에서 어둠을 치고 우리를 늘리고 산으로 간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때가 있었다 산이든 도시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무덤도 남기지 않는다”(<공덕동에서 40> 전문). 글 최재봉 기자,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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