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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빵 터뜨리는 대신, 왜 웃는지 썼어요”

등록 2011-02-11 18:21수정 2011-02-11 22:41

이윤석
이윤석
웃음의 과학
이윤석 지음/사이언스북스·1만5000원
‘박사’ 이윤석의 웃음 교양서
‘잘 웃기고 싶은 고민’ 계기로
독서로 쌓은 과학지식 풀어내

웃음의 과학이윤석 지음/사이언스북스·1만5000원
웃음의 과학이윤석 지음/사이언스북스·1만5000원
개그맨 혹은 코미디언. 웃기는 일이 생업인 이가 책을 냈다. 웃기는 법을 담은 책? 유머나 화술에 관한 책? 아니다. 사람은 왜 웃는지, 웃음을 관장하는 뇌는 어떤 부위인지, 왜 뭇 동물 중에 사람만이 웃을 줄 아는지, 인간의 웃음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아기의 웃음에 담긴 전략은 무엇인지, 웃음의 과학이 드러내는 구슬들을 간잔지런하게 한 실낱에 꿰어낸 교양서다. 남들 웃기느라 바쁠 코미디언이 이런 책을? 왜? 어쩌다?

“시간이 많아서요. 인기 정상의 코미디언이 아니라 그래요. 이경규, 강호동 형처럼 쉴 틈 없었으면 못 했겠죠. 저는 늘 근근이 한두 프로그램만 하잖아요.”

9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의 ‘아저씨스러운’ 이미지보다는 언뜻 대학원생처럼 뵈는, 가늘고 기다란 허우대를 한 그의 대답이다. 17년차 ‘박사 개그맨’ 이윤석(39·사진)씨.

사람들은 어떨 때 웃을까, 어찌 하면 남을 웃길까를 밤낮 고민했을 코미디언으로서 자연스런 질문들이 그로 하여금 과학책들을 뒤적이게 했다고 했다. 뇌과학,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발달심리학을 훑어내리는 그 책들 속에서 그가 만난 건 ‘공포’.

“웃음의 근원에는 공포, 두려움이 있다는 거예요.”

그는 <웃음의 과학>에서 웃음의 기원을 설명하는 ‘거짓경보이론’을 소개한다. 뇌과학자 라마찬드란은 홍적세 인간이 낯선(두려운) 상대를 만났을 때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가 적이 아님을 확인하고 표정을 반쯤 푸는 것을 미소의 기원으로 보았다. 미소가 표정을 풀고 입꼬리를 살며시 끌어올리는 것이라면 그 미소에 연이어 터지는 소리가 웃음이다.


웃음은 한 집단의 구성원이 누군가에게서(혹은 주위 환경에서) 발견한 심상찮은 비정상성이 알고 보니 사소한 것이고 따라서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주위에 알리는 신호로 진화했다는 것. 인류 최초의 웃음은, 자신이 발견했던 비정상성이 거짓 경보임을, 곧 안전한 것임을 깨닫곤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하고 공지하는 신호였던 셈이다. 동물학자 겸 인간행태학자 아이베스펠트도 비슷한 맥락에서 원숭이들이 공동의 적을 집단으로 위협하거나 공격할 때 내는 소리, 곧 집단공격 신호를 웃음의 기원으로 보았다.

“위협적인 존재인 줄 알고 이빨 드러냈다가 아, 아니네 하고 웃는 거예요.”

그가 웃음의 과학 책을 낸 건 ‘과학책 광’이었기에 가능했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의 책을 접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웃음에 관해서는, 대중들이 읽을 만한 한 권짜리 책이 없고 책마다 여기저기 토막토막으로밖에 없을까 하는 거였어요. 책들에서 웃음에 관한 내용들을 모으다가 문득 어느 날 책이 되겠다 싶었죠.”

그가 구입하는 책만도 1주일에 대여섯 권. 덕분에 한 인터넷서점의 ‘브이브이아이피’ 고객이란다. “책을 많이 사서 그런지 항상 선물이 딸려와요. 그 서점에서 이윤석 고객이 저인 줄 알까요? 알아야 할 텐데, 흐흐.”

<웃음의 과학>은 3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 “남을 공격하는 독설 개그. 김구라, 박명수는 왜 인기가 있을까. 질투가 났어요. 왜 좋아할까. 진화심리학 이론은 친한 사이엔 공격적인 웃음이 가능하다고 했더라고요. 나는 빵빵 터뜨리지 못하는데. 아, 내가 시청자를 먼 친구로 대했구나. 아기의 사랑스런 웃음도 결국 위험(불안)과 안전(안심)의 모순 속에서 터지는 겁니다. 엄마 아빠라는 존재가 아기를 안고 흔들거나 까꿍 하는 행동은 아기에겐 위협적인 행동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 행동을 하는 존재가 안전한 엄마 아빠이니 위협이 아님을 파악하는 순간, 내는 소리가 웃음인 거죠. 그런 일맥상통한 흐름이 재미있지 않나요? 아기는 약자이다 보니까 웃음이 권력이죠. 대부분 아기들이 승리하는 것 같아요.” 오르락내리락 인기에 울고 웃으며 웃음을 업으로 삼아온 코미디언이 책을 낸 까닭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1년 전쯤 원고를 출판사(사이언스북스)에 투고했다. 그 이윤석이 알고 보니 개그맨 이윤석이었다는 게 출판사 쪽 전언이다. “찔러나 보자는 심정이었죠. 진짜 책을 내줄 줄은 몰랐어요. 개그맨이어서가 아니라 내용이 좋아서 내는 것이라던 편집자의 말이 가장 기뻤어요. 하지만 제가 개그맨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낼 수 있었을까요? 개그맨이 되지 않았다면, 복지부동에 칼퇴근하는 공무원, 인터넷에 댓글 무지하게 많이 다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아요.”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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