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요리 속 과학 알면 밥상이 달라진다

등록 2011-02-25 18:37

이희건
이희건
음식과 요리해럴드 맥기 지음·이희건 옮김/백년후·7만8000원

건강한 음식 위한 ‘주방과학’책
“재료 특성 따라 조리법 달라져”
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통찰

음식과 요리해럴드 맥기 지음·이희건 옮김/백년후·7만8000원
음식과 요리해럴드 맥기 지음·이희건 옮김/백년후·7만8000원
기존에 나온 음식이나 요리를 다룬 책들을 보면, 흔히 실질적인 요리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이거나 음식·요리를 둘러싼 문화사 등을 풀이한 인문서 정도로 그 성격을 나눠볼 수 있다. 그러나 무려 1300여쪽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음식과 요리>는 그런 분류법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주방과학’에 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인 해럴드 맥기는 “음식 역시 서로 다른 화학물질들의 혼합물”이라고 주장하며, 주방과학이라는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로 꼽힌다. 기본적으로 화학자인 그는 한평생 요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일과 그 연구 결과를 주방으로 되돌려보내기 위한 저술과 강연에 매진해왔다.

이 독특하면서도 방대한 책을 우리말로 옮긴 사람은, 다름아닌 이 책을 펴낸 신생 출판사 ‘백년후’의 전무이사를 맡고 있는 출판인 이희건(사진)씨다. 주로 과학서 출판에 힘써 왔던 그는 유기농·로컬푸드 등 건강한 음식에 대한 책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났다고 한다.

“1984년 처음 출간돼 대중적으로도 학술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쳤던 책인데, 방대한 분량에 따른 비용 부담 때문인지 국내엔 소개된 적이 없더라고요.”

앞서 재직했던 동녘출판사의 이건복 사장이 재정적 지원을 해 주었지만, 비용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결국 이씨가 직접 번역에 나섰다. 분량이 많아 여덟달 동안 이 일에만 꼬박 매달렸는데 “너무 재밌어서” 금세 번역을 끝냈다고 한다. 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강철훈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교수와 서승호 요리사를 감수자로 모셨는데, 감수자들도 “꼭 필요로 했던 책”이라며 이씨만큼이나 책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이씨는 “음식과 요리에 대해 우리가 빠뜨리고 있던, ‘왜’와 ‘어떻게’를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통 과학자들은 요리를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고 요리사들은 과학적 이해 없이 음식을 만든다. 그러나 ‘왜’와 ‘어떻게’를 통해 그 둘은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다. 이를테면, ‘왜 어떤 고기는 흰색인데, 어떤 고기는 붉은색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해답은 근섬유의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갑작스럽고 빠른 운동을 하는 근섬유와 달리, 오랫동안 지속적인 운동을 하는 근섬유는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산소를 전달해주는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다. 그 단백질이 고기를 붉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음식을 ‘어떻게’ 만드느냐와 연결되게 된다. 결국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의 맛과 영양을 좌우하게 되는 셈이다. 인간 아기의 몸무게가 갑절로 늘어나는 데에는 100일이 걸린다. 그러나 송아지의 경우엔 50일 걸린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뭘까? “소젖은 모유보다 단백질과 미네랄 비중이 갑절 이상 높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세상의 음식들을 들여다본 이 책에는 이러한 깨달음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과학적 사실들만을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씨는 “보편성을 근거로 한 ‘통찰’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문화 등에 대한 인문학적인 지식이 깔려 있어, 음식과 요리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좋은 고기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마블링’ 기준에 대해, 지은이는 “미국 소농장주협회가 농무성에 로비를 펼쳐 도입된 기준이며, 다량의 마블링이 결코 소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밝힌다. 또 그 뒤에는 경제적 요구에 따라 고기의 맛을 단순·표준화하는 ‘도시형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단것을 먹기 위한 유럽의 사탕수수 대량재배는 식민지 경영과 노예노동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농장 소유주들이 벌어들인 막대한 부는 산업혁명 초기의 돈줄이 됐다. 농업혁명은 관개시스템을 장악한 극소수가 다수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위계사회의 시작이었으며, 곡물을 중심으로 한 식단의 단순화를 낳은 “편식의 주범”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씨는 “안다는 것은 곧 주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고 말했다. 곧 우리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앞으로도 건강하고 좋은 음식에 대한 책을 만들어갈 계획”이라며 “출발점이 되는 이 책이 어떤 주방에서라도 꼭 갖춰야 하는 ‘필수도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앎과 그에 따른 새로운 창조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결국 밥상이기 때문이란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