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봄호서 일제히 특집 게재
지인·문인들 글과 사진 실어
고인 문학정신·사람됨 기려
지인·문인들 글과 사진 실어
고인 문학정신·사람됨 기려
1월22일, 눈 오는 겨울 아침 먼 길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를 추모하는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새로 나온 문예지 3월호와 봄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특집을 마련해 고인의 문학 정신과 사람됨을 기렸다. 이런 열기는 박경리나 이청준, 오규원 등 최근 몇 년 새 타계한 유명 문인들의 경우와 비교해서도 이례적일 정도다. 생전의 고인이 진솔한 문학 언어로 독자의 가슴을 파고든데다, 문단 안팎의 친지와 후배들을 특유의 너른 품으로 품어 안은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추모 열기를 선도한 것은 <현대문학> 3월호다. 이 잡지는 생전에 고인과 같은 동네에 살았던 사진작가 구본창이 찍은 그이의 웃는 사진을 표지에 싣고 큰딸 호원숙씨를 비롯한 열여섯 사람의 추모 글과 평론 및 연보, 그리고 작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단편 <석양을 등지고 그림자를 밟다>를 재수록한 특집을 마련했다.
‘엄마의 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호원숙씨는 지난해 5월 모친이 발을 다치는 바람에 응급실 신세를 졌던 일에서부터 10월의 암 진단, 그리고 마지막 날들로 이어지는 시간을 눈물과 그리움 속에 회고한다. 평소 작가인 어머니를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쯤은 양보해야만 했던 딸들은 병상에 누운 엄마를 비로소 독차지하며 심지어 ‘행복감’을 맛보기까지 한다. “병상에서 드디어 엄마는 우리 차지가 되었다. 부은 발을 씻어드리고 피가 돌도록 문질러드렸던 그 시간은 엄마에 대한 경배의 시간이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썼다는 마지막 일기에서 선생은 소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 표한다. “병원 가는 날, 퇴원 후 첫 바깥나들이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되었는데 잘 다녀왔다. (…) 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점심은 생선초밥으로 혼자 맛있게.”
후배 작가 구효서는 고인의 소설 제목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비튼 ‘지난겨울은 추웠네’라는 제목의 글을 같은 특집에 기고했다. 그의 인상에 박힌 고인의 모습은 “항상 웃고 계셨지만 언제나 뼛속까지 추우셨던 분”이다. “소박한 웃음의 원형 같은 표정. 그리고 가냘프면서도 약간 움츠린 어깨. (…) 왜 저토록 움츠리실까. 추워서, 라고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은 계절과 상관없이 추위를 타신 것이다.” 그가 이해하기에 선생을 평생 동안 붙잡고 놓아 주지 않은 추위는 선생의 성장을 스무 살에 멈추게 만든 저 전쟁통 1월의 추위였다. 그리고 “끝내 그 1월 추위 속에서 선생님은 다시 못 올 세상으로 떠나셨다. (…) 선생님은 마침내 그 추운 겨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 추운 겨울에 떠나신 것이다.”
생전에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던 이해인 수녀 시인은 선생이 남편과 외아들을 차례로 잃은 1988년 자신이 있던 부산의 수녀원 언덕방 1호실에 고인을 한동안 머무르게 했던 일을 회고했다. 그 방에서 참척의 고통과 절대자를 향한 원망에 몸부림치던 선생은 그 고통과 원망을 승화시켜 신앙산문집 <한 말씀만 하소서>와 중편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쓰게 된다.
이밖에도 박경리 선생의 원주 토지문화관 노제 때 제수로 나온 메밀전병을 맛있어하는 고인을 위해 음식을 챙겨 드리겠노라 했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던 안타까운 추억을 털어놓은 후배 작가 이혜경, 고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일과 함께 고인을 부추겨서 창작극을 쓰도록 하려다가 여의치 않았던 경험을 소개한 연기자 최불암, <나목>으로 등단한 직후 자신의 어머니인 소설가 고 최정희에게 인사차 마포 아파트로 찾아왔던 마흔 살 ‘젊은’ 박완서를 추억한 소설가 김채원을 비롯해 유종호·정양모·김화영·윤석남·이인호·구본창씨 등이 같은 특집에 글을 보탰다. 구본창의 글 제목이 ‘마음속의 어머니, 박완서 선생님’이거니와, 고인을 어머니 삼아 따르던 이는 더 있었다. <실천문학> 추모 특집에 참여한 시인 민병일과 <문학동네>에 글을 쓴 시인 이병률이 대표적이다. 보길도와 티베트, 지리산, 와온과 곡성 등 선생과 함께했던 여행지의 사진들로 <실천문학>의 화보를 꾸민 민병일은 생전에 선생이 자신을 ‘피붙이 관계’로 인정(?)해 주었던 것을 자랑스레 회고한다. “제 나이 여섯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지라 모정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저에게 선생님은 모정의 자애로운 마음을 보여주셨고, 저 역시 선생님을 어머니처럼 생각했습니다.” 이병률 역시 지난해 3월 말, 중국 상하이 인근 물의 도시 우전에 갔던 여행에서 중국인 일가족이 자신을 선생의 효심 깊은 아들로 오해했던 일을 그리움 속에 회고한다. “나는 그 순간 당신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랬으면. 아들이었으면. 그리하여 당신이 가지를 붙들어 조금은 든든했으면. 내가 당신에게 오래오래 그랬으면.” 모성이야말로 박완서의 삶과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쇳말이라는 사실을 이들의 고백에서 짐작하게 된다. 고인의 소설을 가리켜 “한국 모계문학의 수원지(水源地)”(장석주, <21세기문학> 봄호)라고 한 평자의 언급은 바로 그 점을 겨냥하고 있음이다. 이밖에도 <문학과사회> 봄호(김치수)와 <문학사상> 3월호(정여울)가 고인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는 평론을 실었고, <창작과비평> 봄호는 고인의 생전 마지막 책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대한 후배 작가 윤영수의 서평을 실어 추모 열기에 동참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구본창
박완서
이밖에도 박경리 선생의 원주 토지문화관 노제 때 제수로 나온 메밀전병을 맛있어하는 고인을 위해 음식을 챙겨 드리겠노라 했던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던 안타까운 추억을 털어놓은 후배 작가 이혜경, 고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일과 함께 고인을 부추겨서 창작극을 쓰도록 하려다가 여의치 않았던 경험을 소개한 연기자 최불암, <나목>으로 등단한 직후 자신의 어머니인 소설가 고 최정희에게 인사차 마포 아파트로 찾아왔던 마흔 살 ‘젊은’ 박완서를 추억한 소설가 김채원을 비롯해 유종호·정양모·김화영·윤석남·이인호·구본창씨 등이 같은 특집에 글을 보탰다. 구본창의 글 제목이 ‘마음속의 어머니, 박완서 선생님’이거니와, 고인을 어머니 삼아 따르던 이는 더 있었다. <실천문학> 추모 특집에 참여한 시인 민병일과 <문학동네>에 글을 쓴 시인 이병률이 대표적이다. 보길도와 티베트, 지리산, 와온과 곡성 등 선생과 함께했던 여행지의 사진들로 <실천문학>의 화보를 꾸민 민병일은 생전에 선생이 자신을 ‘피붙이 관계’로 인정(?)해 주었던 것을 자랑스레 회고한다. “제 나이 여섯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지라 모정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저에게 선생님은 모정의 자애로운 마음을 보여주셨고, 저 역시 선생님을 어머니처럼 생각했습니다.” 이병률 역시 지난해 3월 말, 중국 상하이 인근 물의 도시 우전에 갔던 여행에서 중국인 일가족이 자신을 선생의 효심 깊은 아들로 오해했던 일을 그리움 속에 회고한다. “나는 그 순간 당신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랬으면. 아들이었으면. 그리하여 당신이 가지를 붙들어 조금은 든든했으면. 내가 당신에게 오래오래 그랬으면.” 모성이야말로 박완서의 삶과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쇳말이라는 사실을 이들의 고백에서 짐작하게 된다. 고인의 소설을 가리켜 “한국 모계문학의 수원지(水源地)”(장석주, <21세기문학> 봄호)라고 한 평자의 언급은 바로 그 점을 겨냥하고 있음이다. 이밖에도 <문학과사회> 봄호(김치수)와 <문학사상> 3월호(정여울)가 고인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는 평론을 실었고, <창작과비평> 봄호는 고인의 생전 마지막 책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대한 후배 작가 윤영수의 서평을 실어 추모 열기에 동참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구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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