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이야기
이섶 지음·김호민 그림/봄나무·1만원
이섶 지음·김호민 그림/봄나무·1만원
‘여기, 사람이, 산다!’ 이렇게 소리지르고 발버둥을 쳐야 비로소 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소외된 이웃’이라 부르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구호 소리가 들리면, 사고라도 생기면, 언론에서 달려와 그들을 비춘다. 호들갑스런 관심은 이내 식지만, 고단한 삶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지은이 이섶은 신문사 기자다. 하지만 ‘기사’가 되는 ‘사건’ 이후에도 그들과 만나고 그 삶을 보려고 노력해왔다. 특히, 어른들의 그늘진 삶 아래서 더 힘들고 더 상처받는 아이들에게 오랜 시간 눈길을 붙들어뒀다. 비닐하우스촌에 사는 정희와 철거촌 진호, 방글라데시에서 온 소년 노동자 하비브와 콩고 이주노동자의 아들 심바, 대형마트 비정규직 아줌마의 딸 지혜·경진이, 폐광촌 광부의 딸 상미….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신문기사가 아닌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아이들의 삶 속에는 강제철거, 아빠의 죽음, 엄마의 구속 같은 극적인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건,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정말로 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일상이다.
비닐하우스촌 정희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자주 외상을 긋는다. 집이 멀어서다. 주소가 없어 친척집에 주소를 올렸고, 아침 일찍 버스를 한참 타고 등교를 한다. 준비물을 깜빡하면 집으로 다시 갈 수도, 엄마에게 가져다 달랠 수도 없다. 또래 친구들에게 얼마든지 허용되는 ‘작은 실수’들이 정희에게는 ‘돌이키기 힘든 잘못’이 된다. 심바는 매일매일 달린다. 숨이 차 죽을 것 같아도 달린다. 아빠처럼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꿈은 마라토너. 경찰이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쫓아와도 못 따라잡는 마라토너다. 경진이 엄마는 비정규직 철폐 시위를 하다 대형마트 안에 갇힌다. 그리고 경찰의 눈을 피해 창밖의 딸에게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엄마가 밥도 못 해 주고 옆에도 못 있어 줘서 미안해. 그래도 날마다 경진이 생각하는 거 알지?…”
‘왜 어떤 엄마 아빠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까?’ ‘왜 어떤 아이는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할까?’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켠에 의문이, 안타까움이, 슬픔이 두텁게 쌓여간다. 책장을 덮고 나면 그 삶을 보려 하지 않았던 각박한 마음에 미안함도 남는다. 감사한 걸 모르고, 남을 볼 줄 모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눈과 마음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초등 고학년부터.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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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섶 지음·김호민 그림/봄나무·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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