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이창신 옮김/김영사
[함께하는 교육] 통합논술 세미나 /
[난이도 수준-중2~고1]
<정의란 무엇인가>
1.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2. 노직, 프리드먼의 자유지상주의
3. 칸트의 자유론, 롤스의 차등원칙
4. 아리스토렐레스의 미덕
▶ 다음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책 소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이창신 옮김/김영사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재화 분배와 관련해 각각 행복, 자유, 미덕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고 본다. 샌델은 각 입장을 대표하는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이마누엘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차례로 훑어본다. 그는 미덕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사례를 들어 어려운 이론을 설명한다. 이게 이 책의 미덕으로, 독자는 정의론이 철학자들의 이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의 삶과 얼마나 강하게 얽혀 있는지 알 수 있다.
■ 풀무질
한 대학생이 열심히 보고서를 쓴다. 그는 학점을 잘 받아서 좋은 직장에 취직한 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 어린아이가 빵을 사려고 가게에 왔다. 바가지를 씌워도 아이는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속였다고 소문이 퍼지면 장사에 타격을 입을까 봐 주인은 제값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은 자기 의지에 따라 행동했으며,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이마누엘 칸트(1724~1804·사진)의 생각은 다르다.
둘 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구나 ‘정직한 상인’이라는 평판을 위해 행동했을 뿐이다. 이런 사람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욕구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자율적 존재’가 아니다.
칸트는 자유를 강조한다. 한데 그의 자유 개념은 독특하다. 자유란 사회적 관습·천성·욕구 등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내 의지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지배될 때만이 자유롭다.
공리주의자처럼 쾌락의 증가나 고통의 감소를 원한다면, 인간이 쾌락이나 고통의 노예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 자살이 나쁜 것은 인간 생명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나를 고통 완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기 팔다리를, 심지어는 치아 하나라도 팔 자격이 없다”.
칸트는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지상주의자의 주장처럼 우리가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자율적 존재로 자유롭게 행동하고 선택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에 걸맞은 최선의 방법이나 결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칸트는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나에게 법칙을 부여하고, 목적 그 자체나 의무 동기를 찾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칸트의 대답은 이성이다. 칸트는 이 이성을 ‘어떤 경험적 목적에도 상관없이 선험적(先驗的)으로 정해지는 순수 실천이성’으로 봤다.
칸트는 이성이 의지에 명령하는 방법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가언(假言)명령과 정언(定言)명령이다.
가언명령은 ‘X를 원한다면 Y를 하라’는 식으로 조건이 붙는다. 정언명령은 그런 조건이 없다. 칸트에 따르면 오직 정언명령만이 도덕적인 명령이다.
칸트는 사회 계약론과 관련해 중요한 말을 했다. 칸트는 다양한 이성적 존재들이 공동의 법칙을 통해 체계적으로 결합한 것을 국가라고 불렀다. 그러나 구체적인 결합 방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거의 2세기 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1921~2002)는 이 물음에 답하고자 했다.
“한 사회의 정의 여부는 권리와 의무가 할당되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롤스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했다.
사회 계약 내용을 정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사회 안에서 자기 위치를 모른다. 자신의 계층과 성별, 인종과 민족,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신념, 남보다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한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태’에서 선택한다. 어느 누구도 우월한 위치에 놓이지 않는 상태에서 합의했다면 공정하다.
롤스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사람들은 정의의 두가지 원칙에 합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첫째, 언론·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 자유를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제공한다는 원칙.
둘째,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직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주는 경우에만 정당하다는 원칙. 이게 ‘차등원칙’이다. 차등원칙은 재능 있는 사람을 격려해 그의 능력을 개발하고 이용하게 하되, 시장에서 거둬들인 대가는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한 개인의 재능·노력의 결과는 당연히 개인 소유”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롤스는 타고난 능력은 물론이고 노력 그 자체도 혜택받은 가정 환경의 산물이라고 대답한다.
예를 들어 보자.
일부 심리학자들은 형제의 출생 순서가 노력하려는 태도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첫째가 동생보다 노동 윤리가 더 강하고, 돈도 많이 벌고, 전통적 의미의 성공도 더 많이 거둔다. 실제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학기마다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수강생(명문 하버드대 학생들)의 75~80%가 첫째라고 답했다.
첫째로 태어난 건 개인 노력과 상관없다. 이처럼 출생 순서와 같은 임의적 요소가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노력하는 성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능력 위주 사회가 사회적 우연을 완전히 제거한들, 타고난 능력과 재능에 따라 부와 소득의 분배가 결정되는 상황은 여전히 허용된다. 소득과 부의 분배가 역사적·사회적 우연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듯이, 타고난 자산에 따라 결정되어서도 안 된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면, 그 경기는 공정하다고 보기 힘들다. 기회 균등이 보장되는 자유시장에서 소득과 부가 공정하게 분배된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율적 의지에 관한 칸트의 생각과 무지의 장막 뒤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계약에 관한 롤스의 생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도덕적 행위자를 특정한 목적이나 애착에 구속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 마치질 플라톤은 비이성적 철학자?
거지가 구걸을 하고 있다. 어떤 이가 ‘불쌍한 마음’에 적선을 했다. 모두 그를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논리대로라면 이 사람의 행동은 도덕적 가치가 별로 없다.
이 이타주의자는 불행하게도 어느 날 인류애가 식어 연민과 동정이 메마른 인간 혐오자가 될 수도 있다. 되레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순수한 의무감’에서 타인을 도와야 도덕적 가치가 있다.
사람은 환경과 처지에 따라 변하기 쉬운 연민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자신에게 내리는 그 어떤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는 ‘선험적 이성’의 명령에 따라야 진정한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다. 이게 칸트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인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설사 있다고 해도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기보다는 ‘프로그램된 로봇’과 마찬가지 아닐까?
칸트는 그의 산책 시간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을 정도로 자로 잰 듯 생활했다. 그러나 그의 하인 람페는 칸트 뒷바라지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다가 알코올중독자가 됐고 해고당했다. 칸트는 이 사건으로 생긴 마음의 불편함을 ‘람페를 잊어버려야 한다’는 새로운 법칙을 세움으로써 해결했다고 한다.
다른 문제도 있다. 정언명령이 내 이성의 산물이라면, 사람마다 그게 서로 다르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칸트는 시대적·개별적 경험에 제약받지 않는 ‘선험적 이성’이라는 대답을 준비해 놓았다. 사람이 이 ‘선험적 이성’을 발휘하면 특정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누구나 똑같은 정언명령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당연시했다. 현대인 대부분은 노예제를 이성적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양 철학의 원류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들은 그 누구보다 이성을 강조했다)는 ‘선험적 이성’이 없던 사람이었을까? 그들이 노예제에서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던 건 시대적 한계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칸트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칸트의 철학은 ‘선험적 이성’이 핵심인데, 정작 그게 존재하는지부터 불분명하다.
존 롤스(사진)에게도 의문은 제기된다.
그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정당화된다고 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정책으로 부자들이 100억원의 이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은 단 1원을 번다면? 차등원칙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도 약간의 혜택을 봤으니 괜찮은 것 아닐까?
이런 의문에 롤스는 그의 책 <정의론>에서 “유리한 사람들은 최소 수혜자의 처지를 향상시켜야 하기 때문에 숙련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전체의 이득에 기여할 것”이라며 “개방적 계층제와 경쟁적 경제 체제에서 커다란 불균형이 오래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지상주의자(신자유주의자)들은 ‘낙수효과’(落水效果·trickle-down effect)를 주장한다. 수도꼭지를 계속 틀어놓으면 위 대야의 물이 밑 대야로 넘치듯, 자유방임·감세 정책 등으로 대기업과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면 그들이 투자에 나서 고용이 증가하고 결국 저소득층이 혜택을 본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분배보다는 성장을, 평등보다는 효율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자들과 대립했던 롤스의 이론도 결과적으로 마찬가지 아닐까?
■ 담금질 반쪽에 불과한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를 꺼냈다.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며 “공정한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한다”고 규정했다. 그의 공정사회론 핵심은 ‘기회 균등’이다.
그러나 존 롤스의 견해에 따르면 이는 반쪽 공정성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지적 수준이 똑같은 고3 수험생 갑돌이와 철수가 있다고 하자. 두 사람에게 똑같이 대학에 진학할 기회는 주어져 있다. 그러나 갑돌이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철수는 엄청난 부자다. 더구나 장남인 갑돌이는 집안 생계까지 책임져야 한다. 갑돌이는 열려 있는 대학 진학 ‘기회’를 이용할 수 없다.
갑돌이가 게으르고 창의성이 없다고 해도 논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철수는 부유한 가정 환경 덕에 어렸을 때부터 명품 교육을 받았다. 갑돌이는 동네 보습학원 근처에도 못 갔다. 철수는 “잘한다”는 부모의 격려를 받고 자랐지만, 갑돌이 귓가에는 가난에 찌든 부모의 한숨 소리만 들렸다. 이런 환경에서 갑돌이가 근면·성실·창조력을 가지기는 힘들다.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은 100m 달리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누구에게나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누구는 이미 출발선 30m 앞에 서 있고, 누구는 출발선 10m 뒤에서 무거운 짐을 진 채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다면 애초부터 공정한 경기는 불가능하다.
지난 3월1일 부산의 한 20대 직장 여성이 자살했다. 이 여성은 명품을 사느라 1억원의 카드빚을 진 신용 불량자였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도 친구 카드를 빌려 계속 쇼핑을 했고 결국 “빚을 갚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칸트의 논리에 따르면, 이 여성은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욕구에 굴복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리가 만능은 아니다.
지난 2003년 3월 전신마비로 누워 있던 딸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내 숨지게 한 전 아무개씨가 구속됐다. 전씨는 희귀병에 걸린 딸의 치료비 때문에 집까지 팔았지만 빚이 5000만원에 이르렀다. 전씨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남은 가족들 생각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서글퍼했다.
한 70대 노인이 불치병을 앓던 손자를 죽이고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이 노인의 아들 내외는 가난했다. 손자의 병원비가 엄청난데다가 항상 한 사람은 곁에 붙어 있어야 하니 생활고는 갈수록 심해졌다. 그런 생활이 10년을 넘었다. 노인은 아들 내외의 불행을 눈 뜨고 볼 수 없어 손자와 자신의 목숨을 끊는 비극을 저질렀다.
그 누구도 이런 행동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한편으로 두 사람의 처지를 안타까워할 것이다. 당시 “치료비가 엄청난 희귀병 환자를 국가가 나 몰라라 해서 발생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데 칸트의 이론대로라면 그들의 행위 동기는 궁극적으로는 ‘돈’이다. 이는 인간을 수단으로 삼은 것이며, 행인을 죽이고 지갑을 턴 살인 강도와 다를 게 없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칸트가 말한 정언명령이 될 수 있는가?(600자) 2. 존 롤스는 ‘무지의 장막’에서 참여자들이 ‘차등 원칙’을 선택할 것이라고 봤다. 롤스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회 최하층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차등원칙을 택할 정도의 합리성은 있다고 봤다. 과연 그럴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지 당신의 생각을 써 보시오.(800자) 3.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고양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항상 사회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는 종종 자기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실제로 공익 추구의 의도를 가졌던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공익을 위하게 된다. 나는 공익을 위한다는 사람들치고 공익에 많은 도움이 된 예를 알지 못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칸트의 시각에서 분석해 보고, 스미스와 칸트 가운데 어느 쪽 생각이 옳은지 당신의 견해를 써 보시오.(1000자) 4. 지난해 <슈퍼스타 케이2>에서 허각이 우승했다. 그는 가난했고 키가 작았고 환풍기 수리공 출신이었다. 그와 결승에서 맞붙었던 존 박은 유학파에 훤칠한 외모가 돋보였다. 우승한 허각은 공정사회를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일부에서 허각은 스타 만들기 시스템의 산물일 뿐 공정사회는 별 상관이 없다고 비판했다. ‘허각과 공정사회’를 주제로 논술을 써 보시오.(1600자) 김태경 〈아하! 한겨레〉편집장, ‘한겨레글쓰기연구소’연구위원 중학생의 공부하는 힘 1318클래스(1318class.com)공동기획
<정의란 무엇인가>
1.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2. 노직, 프리드먼의 자유지상주의
3. 칸트의 자유론, 롤스의 차등원칙
4. 아리스토렐레스의 미덕
▶ 다음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책 소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이창신 옮김/김영사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재화 분배와 관련해 각각 행복, 자유, 미덕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고 본다. 샌델은 각 입장을 대표하는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이마누엘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차례로 훑어본다. 그는 미덕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사례를 들어 어려운 이론을 설명한다. 이게 이 책의 미덕으로, 독자는 정의론이 철학자들의 이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의 삶과 얼마나 강하게 얽혀 있는지 알 수 있다.
■ 풀무질
이마누엘 칸트(1724~1804)
■ 마치질 플라톤은 비이성적 철학자?
존 롤스
■ 담금질 반쪽에 불과한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론
지난해 공정사회 상징으로 떠올랐던 <슈퍼스타 케이2> 우승자 허각.
■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칸트가 말한 정언명령이 될 수 있는가?(600자) 2. 존 롤스는 ‘무지의 장막’에서 참여자들이 ‘차등 원칙’을 선택할 것이라고 봤다. 롤스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회 최하층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차등원칙을 택할 정도의 합리성은 있다고 봤다. 과연 그럴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지 당신의 생각을 써 보시오.(800자) 3.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고양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항상 사회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는 종종 자기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실제로 공익 추구의 의도를 가졌던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공익을 위하게 된다. 나는 공익을 위한다는 사람들치고 공익에 많은 도움이 된 예를 알지 못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칸트의 시각에서 분석해 보고, 스미스와 칸트 가운데 어느 쪽 생각이 옳은지 당신의 견해를 써 보시오.(1000자) 4. 지난해 <슈퍼스타 케이2>에서 허각이 우승했다. 그는 가난했고 키가 작았고 환풍기 수리공 출신이었다. 그와 결승에서 맞붙었던 존 박은 유학파에 훤칠한 외모가 돋보였다. 우승한 허각은 공정사회를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일부에서 허각은 스타 만들기 시스템의 산물일 뿐 공정사회는 별 상관이 없다고 비판했다. ‘허각과 공정사회’를 주제로 논술을 써 보시오.(1600자) 김태경 〈아하! 한겨레〉편집장, ‘한겨레글쓰기연구소’연구위원 중학생의 공부하는 힘 1318클래스(1318class.com)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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