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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수재라 불리지만…나는야 만년 꼴찌

등록 2011-03-25 18:37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스토리에 강한 이재익의 새 작품
딱 한 번 이긴 서울대 야구부 소재
미학 걷어내고 소설 본령에 충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황소북스·1만2000원

소설이 이야기이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소설은 무엇보다 이야기라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는 없다. 한국의 소설 독자들이 국내 소설보다 일본 소설에 더 열광하는 큰 까닭이 바로 이야기성에 있음은 물론이다. 한국 소설이 미학에 치중한답시고 이야기를 소홀히 한 틈을, 풍부한 이야기로 무장한 일본 소설이 파고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꾼’을 자처하는 이재익(36) 같은 작가의 존재는 소중하다. 1997년 <문학사상>을 통해 ‘정식’ 등단한 그는 그 뒤로는 평론가들의 인정보다는 독자들의 사랑을 자양분 삼아 활발하게 소설을 써 왔다.

그의 여섯 번째 장편인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역시 편안한 필치로 풍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2011년 3월 현재 1승 1무 265패라는 ‘진기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대 야구부와 부원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2004년 9월 대학야구추계리그에서 광주 송원대를 2 대 0으로 이겨 꿈에 그리던 1승을 거두기 전까지는 무려 199연패!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만든 가장 야구 못하는 야구팀”이라는 설명은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서울대 야구부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재익 작가
이재익 작가

소설은 서울대 야구부의 투수였던 김지웅을 화자로 삼아 진행된다.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소설 첫 장면에서 아내와 함께 가정법원을 찾아 이혼 절차를 밟는다. 그 전에 그는 이미 일에서도 쓰라린 실패를 맛본 터. 대기업의 영화 제작 투자 부문에서 일하다가 고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옮겨 갔던 그는 옮긴 직장에서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서른다섯 한창 나이에 ‘실직과 이혼이라는 연타’를 맞은 셈이다.

그런 그가 예전부터의 꿈이었던 시나리오를 쓰기로 한다. 소재는 자신이 그 일부였던 서울대 야구부. 소설은 그가 시놉시스를 작성하고 시나리오를 써 나가는 현재의 이야기와 서울대 야구부에서 활약하던 1990년대 중후반의 이야기를 오가며 진행된다.

작가는 1회초부터 9회말, 그리고 연장전까지 야구 경기 식으로 나눈 장들에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요령껏 갈무리한다.

과거의 이야기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남부러울 것 없는 서울대생들이 무엇 때문에 매번 지기만 하는 야구에 그토록 매달리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야구부 감독이었던 이만득의 말이 적실하다. “니들은 별로 져본 적 없이 살아왔다. 머리가 좋아서, 노력을 많이 해서 대한민국 최고의 서울대학교 학생이 되었다. (…) 니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이끄는 리더가 될 거다. 그런 니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바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니들보다 덜 똑똑하고 덜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여유. 머리로만 알면 안 되고 가슴속에 그 마음을 품어야 하는 기다. (…) 나는 니들에게 지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 대목에서 이 소설은 같은 ‘야구 소설’인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오르게 한다. 야구는 야구이되 이기는 야구가 아닌 지는 야구를 그린다는 점에서다. 그런가 하면 이 소설은 또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와도 닮았다. 축구에 관한 경구와 축구 선수들의 일화를 양념처럼 흩뿌려 놓았던 <아내가 결혼했다>와 비슷하게,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역시 야구에 관한 금언과 야구 경기 및 선수들의 이야기를 적절히 버무려 놓은 것.

소설 속 현재의 이야기는 지웅의 서울대 야구부 시절 포수였던 법대생 장태성의 행방을 추적하는 움직임, 그리고 지웅이 오피스텔의 이웃인 젊은 여성 이슬과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촉촉한 감정이 솟아나는 과정을 두 축으로 삼아 전개된다. 소설의 마지막 ‘연장전’ 장에서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추적은 한 지점에서 만나면서 독자의 눈물샘을 건드리는 결말로 수렴된다. 그리고 결말 장면의 감동은 지웅으로 하여금 이런 결론으로 나아가게 한다. “대한야구협회의 공식기록으로 서울대 야구부는 단 한 번 이기고 256번을 졌다. 하지만 우리가 했던 경기는 모두 승리였다. 꿈과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패배가 아니니까.”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뒤 예술성을 요구하는 문단의 풍토 때문에 힘들었다”는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젊은이들이 소설이 아닌 방송과 영화, 드라마 쪽으로 빠지는 데에는 예술성이라는 이름의 옹벽을 높이 쌓아 온 평론가들과 기성 문인들의 배타성에도 책임이 있다”고 일갈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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