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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제 소녀’ 인문학적 독립을 꿈꾸다

등록 2011-04-01 20:41

스스로를 찾아 세상에 나온
‘중졸 백수’의 건강한 방황기
나이 믿기지 않는 ‘깊이’ 담겨
다른 십대의 탄생-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
김해완 지음/그린비·1만2천원

김해완은 17살에 대안학교를 그만두고 18살에 집에서 나온 19살 소녀다. 그런데 자퇴와 가출을 감행하고서 한 일이 생뚱맞다. 인문학 공부. 이 ‘문제적 소녀’가 <다른 십대의 탄생-소녀는 인문학을 읽는다>를 펴냈다. ‘중졸 백수의 독립기’인데,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고 표현하는 수준이 남다르다. 또래는 물론 어른들도 살아보지 않은 삶을 살고 읽어보지 않은 책을 읽어서인가. 소녀의 글을 읽다보면, 이 책이 왜 ‘인물서’가 아닌 ‘인문서’인지 알 수 있다.

자퇴의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지극히 정답스럽다. 그는 “자퇴는 그때까지 살아온 삶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요약한다. 삶과 공부에 의욕없던 때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알게 된 우연, 우연이 연거푸 몇차례 이어진 인연이 ‘실행’의 근거. 게다가 부모도 자퇴를 반대하지 않았다. 결국 소녀는 학교를 떠나 ‘수유+너머’로 갔고,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의 지은이 ‘곰숙쌤’(고미숙)을 만나 ‘맨땅에 헤딩’식 공부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열아홉, 고3들의 꿈은 보통 특정 대학 입학이거나, 그 대학 졸업 후의 어떤 직업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니체·마르크스·들뢰즈 등의 책이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공부하는 삶을 살면서도, 향후 몇 년간 대학에 갈 계획이 없다. 현재 목표는 독립. 소녀는 “십대 끝 무렵에 내 방식대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꾸는 건 이상한가? 아니다. 부자 남편과 결혼하겠다는 꿈, 의사가 되겠다는 꿈은 꿔도 되고 내 힘으로 살겠다는 꿈은 꾸지 말란 법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으며 여주인공 베라와 함께 ‘진정한 독립’에 대해 고민한다.

독립 의지가 독서와 글쓰기 속에서만 드러나는 건 아니다. 그는 집을 떠나 ‘수유+너머’의 공동생활 공간인 서경재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12명이 매달 15만원씩 내고 월세 200만원짜리 널찍한 집에 살며 ‘공동생활의 놀라운 힘’을 직접 체험한다. 또 ‘미성년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장’에 취직도 한다. 맥도날드에서 시급 4110원을 받으며 한달 19만7천원을 번다. 하지만 이 ‘인문학적인 소녀’에게는 자신의 노동과 직장마저 관찰과 연구의 대상이다. 그는 ‘1번 카운터’의 직무를 지루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기술력과 노하우는 쌓여가는데 자부심은 축적되지 않는 이유’를 고민한다. 또 다른 사람들이 맥도날드의 저임금을 욕할 때, 맥도날드의 ‘합리적인 착취 구조’를 분석하기도 한다. 맥도날드에서 이 소녀를 함부로 대한 어른 손님들은 졸지에 ‘불쌍한 연구대상’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초보적인 감정, 불쾌함이나 초조함을 다스릴 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소비하는 주체로서만 해소한다.”

용감한 독립소녀 김해완에게 독립이란 평범한 일상 하나 하나를 꾸려가는 것, 모든 익숙한 것들이 나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을 설명해 주는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아직 물음표. 그는 현재 똑같은 일상의 문턱에 또다시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하며 독립을 위한 방황 중이다. ‘글’을 믿고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하는데, 자신의 전부를 던져 글을 쓴다는 당찬 소녀의 다음 글과 미래의 모습이 매우 궁금해진다. 고등학생 이상.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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