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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42가 37보다 왜 큰지 당신은 설명 가능해요?

등록 2011-04-08 20:48

<교과서를 믿지 마라!>
<교과서를 믿지 마라!>
어른도 모를 어려운 초등 교과서에 반기
“아이들 공부에 흥미잃는 건 교과서 탓”
교사들 “난이도 조절을” 해결책 제시
<교과서를 믿지 마라!>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지음/바다출판사·1만3800원

제목이 도발적이다. ‘교과서를 믿지 마라’니! 교과서가 무엇인가. 교사와 학생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교육에서 핵심적인 매개체가 아닌가. 그런 교과서를 믿지 않으면, 무얼 믿으라는 말일까. 게다가 이런 도발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이 다름 아닌 교사들이라면?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면서 2006년부터 교과서를 연구해 온 교사들이 모인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소속 교사들이 쓴 책 <교과서를 믿지 마라!>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샅샅이 해부하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결과,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잃고 배우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는 까닭이 잘못된 교과서에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들과 교사를 바보로 만드는 초등 교과서의 비밀’이라는 이 책의 부제에 그런 주장이 집약되어 있다.

지은이들이 지적하는 교과서의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신입생들의 국어 1단원 듣기·말하기 네 번째 시간에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입학 전에 한글을 익히고 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쓰기 3단원에서 ‘생년필’을 ‘색연필’로, ‘옌날’을 ‘옛날’로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수학은 어떤가. ‘덧셈식을 뺄셈식으로 만들고 뺄셈식을 덧셈식으로 만들기’를 1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1학년 2학기 수학익힘책 2단원에서 놀이공원의 마름모꼴 바닥 무늬에서 찾을 수 있는 규칙을 설명하라는 질문도 아이들 수준과는 맞지 않는다. “이 문제에서 무늬의 규칙을 설명할 수 있는 1학년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지은이들은 단언한다. 2007 개정 교육과정 이전의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5학년이 배우던 내용이란다.

사과 6개를 한 봉지에 2개씩 담을 때 몇 봉지에 담을 수 있는지를 묻는 3학년 1학기 나눗셈 학습 내용까지는 그렇다 치자. 여기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시오’라는 질문이 이어지면 속수무책이다. ‘직접 담아 보니까’ ‘2개씩 동그라미 해 보니까’ ‘눈으로 보니까’라는 하나마나한 대답이 나오기 일쑤다. 3700과 4200 중에서 어느 수가 크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것도 마찬가지.

21÷3=7이라는 나눗셈 식을 세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라는 지시는 어떤가. 한 학부모는 3학년 수학 교과서에서 이 질문을 보고 너무 화가 나 교육부 장관에게 질의서를 보냈단다. 장관님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느냐고. 이런 문제들은 창의성을 키운다며 자꾸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낼 것을 강요하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1학년 국어에서 스스로 시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친구들이 쓴 시를 듣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도록 하는 것 역시 아이들에게 과도한 부담감을 주는 일이다.

초등학교 교과서가 아이들 수준에 맞지 않거나 과도한 학습 부담을 안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 <교과서를 믿지 마라!>가 나왔다. 사진은 한 초등학교 교실의 수업 장면(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한겨레> 자료사진
초등학교 교과서가 아이들 수준에 맞지 않거나 과도한 학습 부담을 안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 <교과서를 믿지 마라!>가 나왔다. 사진은 한 초등학교 교실의 수업 장면(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한겨레> 자료사진
7차 교육과정과 2007 개정 교육과정이 뒤섞여 있는 데서 오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특히 5학년까지는 7차 교육과정으로 배우고 마지막 학년에 2007 개정 교육과정으로 공부하게 된 올해 6학년은 심각한 학습 결손이 예상된다. 사회 교과서의 역사 영역이 기존의 6학년 1학기에서 5학년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올해 6학년은 (한국)역사를 배우지 못한 채 졸업할 처지에 놓였다. 이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교육부는 아이들에게 7차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역사)를 추가로 주고 사회 시간에 보충하도록 했는데, 아이들에게나 교사들에게나 부담이 됨은 물론이다.


<교과서를 믿지 마라!>는 이렇듯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현행 교과서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학년별 아이들의 특성을 소개하고 부모님들이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지 도움말을 곁들였다. 교과별 개선책도 나름껏 제시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애초 2014년으로 예정했던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새 교과서를 1년 이른 2013년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여섯달만에 교과서 만들라니…부실 불보듯”). 이 책의 지은이들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영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들에서 불필요하게 어려운 내용을 빼고 학습 분량도 줄이는 등 일단 방향은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8월 초에 교육과정을 고시하고 내년 3~4월에 교과서 검정 신청 접수를 한다는 일정상 교과서 졸속·부실 제작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대로라면 새로 개정 적용될 교과서 역시 믿을 수 없게 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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