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라, 비둘기
잠깐독서
꺼져라, 비둘기
김도언(39)의 소설 <꺼져라, 비둘기>는 단순하고 명백한 선악의 이분법 위에 서 있다. “언젠가 한번쯤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 친절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마따나 이 소설은 쉽게 읽힌다. 소설의 무대는 토담리라는 작고 예쁜 소읍인데, 5년 전 커다란 타이어 공장이 들어서면서 소란하고 활기찬 곳으로 바뀌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비둘기가 갑자기 많아졌다는 것. ‘비둘기 아빠’를 자칭하는 세탁소 주인 박기평이 수백마리 비둘기를 세탁소 2층 환풍구 안에서 키우며 닭 사료를 넘치도록 뿌려 주어 비둘기들의 번식을 돕는다. 터지도록 배를 채운 비둘기들이 지나는 이들의 옷에 똥을 싸면 그 옷을 세탁소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세탁소 매출이 올라간다는 점을 계산한 것. 세탁소 주인 박씨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목욕탕 주인 주달식, 오토바이 상회 주인인 계씨 형제, 식당 ‘비둘기네 해장국’을 운영하는 옥미희와 그의 아들 조만세 등이 악역을 맡는다.
소설은 옥미희의 의붓아들인 열여덟살 강이산과 스물세살 시인 고영만의 시점으로 차례로 서술되며, 이산과 영만의 서술이 끝난 뒤 ‘소설 밖에서 모인 사람들’이라는 두개의 꼭지가 배치되어 주요 등장인물들이 소설가와 함께 소설 내용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흔히 평화라는 말과 연결되는 비둘기가 여기서는 비루한 욕망의 상징으로 쓰이는데, ‘이기기 싫어하는 씨름꾼’이었던 이산의 거인 아버지가 그 비둘기들의 횡포를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로 나서는 결말까지 소설은 시종 착하고 친절하다. 문학과지성사·1만1000원.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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