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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칼의 도시·불륜의 성…한·중·일 작가 ‘날것’을 말하다

등록 2011-05-20 20:08

한·중·일 작품 교류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 왼쪽부터 이승우·김애란·김연수·정이현.
한·중·일 작품 교류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 왼쪽부터 이승우·김애란·김연수·정이현.
같은 주제 놓고 쓴 소설
비교하며 읽는 색다른 재미
3개국 현대 도시인의 삶
불안·불만 생생하게 그려
〈젊은 도시, 오래된 성〉
이승우 외 지음/자음과모음·1만3000원

한국의 계간 <자음과모음>, 일본의 월간 <신초>, 중국의 격월간 <소설계> 세 문예지가 세 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함께 싣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한겨레> 2010년 3월19일치 23면) 한국의 이승우·김애란, 일본의 시마다 마사히코·시바사키 도모카, 중국의 쑤퉁·위샤오웨이가 도시를 주제로 한 단편 하나씩을 써서 세 잡지에 나란히 실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의 김연수·정이현, 일본의 고노 다에코·오카다 도시키, 중국의 거수이핑·쉬이과가 성(性)을 주제로 쓴 단편들이 역시 세 잡지에 실렸다.

일본 작가들. 왼쪽부터 시마다 마사히코·시바사키 도모카·고노 다에코·오카다 도시키.
일본 작가들. 왼쪽부터 시마다 마사히코·시바사키 도모카·고노 다에코·오카다 도시키.

<젊은 도시, 오래된 성>은 그렇게 두 번에 걸쳐 발표된 세 나라 작가 열두 사람의 작품을 한데 모은 것이다(중국어 번역 김태성·일본어 번역 양윤옥). 세 나라 소설가들과 평론가들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낭독회를 겸한 심포지엄을 열어 사상 초유인 동아시아 세 나라 작품 교류의 의미와 성과를 중간 결산했다. 세 잡지는 근간호에도 여행을 주제로 한 세 나라 작가들(박민규·조현, 에쿠니 가오리·마치다 고, 예미·쉬저친)의 단편을 실었으며, 이 프로젝트는 올 11월에 나오는 잡지들에 상실 주제의 단편 여섯이 실리는 것으로 일단락될 예정이다.

중국 작가들. 왼쪽부터 쑤퉁·위샤오웨이·거수이핑·쉬이과
중국 작가들. 왼쪽부터 쑤퉁·위샤오웨이·거수이핑·쉬이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쓴 세 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는 일은 흥미로운 독서 체험을 제공한다. 이승우의 <칼>과 위샤오웨이의 <날씨 참 좋다>에는 나란히 칼이 중요한 소도구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승우의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칼을 수집하는 남자의 제안으로 그의 부친인 노인의 말 상대가 되어 주는 일을 맡는다. 근무 시간은 해가 질 때부터 해가 뜰 때까지. 어둠을 두려워하는 노인은 열다섯 개의 전등을 켜 둔 방에서 주인공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다가 힘겹게 잠을 청하곤 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노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주인공에게 일을 맡긴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놈이 언젠가 나를 죽일 거야”라고 노인은 말하는데, 아들은 거꾸로 노인이 “나를 죽일 거야”라고 믿고 있다. 그가 자신의 부친을 방문할 때 소매 속에 단검을 숨겨 지니고 가는 것이 죽이기 위한 것인지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함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많은 재산을 축적했으면서도 아들을 믿지 못해 그에게는 “일다운 일을 맡기지 않”는 늙은 아비와, “아버지가 하는 모든 험한 말들을 옷 속의 칼이 막아주는” 느낌이라면서 끝내 칼을 놓지 못하는 아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게 하는 것이 칼”이며 “누구나 칼 한 자루씩 품고 산다”는 남자의 말은 잔혹하고 삭막한 도시의 삶을 견디기 위해 칼로 상징되는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하는 비정한 세태를 환기시킨다.


<날씨 참 좋다>에서 칼은 범죄로 먹고사는 린광과 그의 기세에 눌려 꼼짝없이 범죄의 하수인 노릇을 해야 하는 허진저우의 범행 도구로 나온다. 허진저우를 데리고 절도와 마약 거래 사건을 일으켰던 린광은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된 그를 다시 불러내 이번에는 칼을 이용한 강도 범행을 저지르려 한다. 더 이상 범죄에 연루되기 싫은 허진저우는 마지막 순간에 꾀를 내어 린광을 당국에 신고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늪에서 빠져나온다. 현대 소설에서는 드물게 인간적이고 희망적인 결말이 오히려 인상적인 작품이다.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의 결말 역시 희망을 향해 열려 있긴 하지만, 그 희망은 매우 희미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철거가 시작된 아파트에 모자 단둘이 남았는데, 50년 만의 폭우가 내려 동네 전체가 물에 잠긴다. 당뇨를 앓던 엄마마저 죽고 나자 사춘기 소년인 주인공은 임시로 만든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물 위로 솟아오른 타워 크레인 위에 어렵사리 ‘상륙’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크레인 위에서 소년은 “누군가 올 거야”라며 조그맣게 중얼거리는데, 골리앗 크레인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칼바람이 그런 소년의 음성을 가려 버릴 듯 불어온다….

<쌀> <나, 제왕의 생애>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쑤퉁의 <샹차오잉>은 같은 병원의 약제사와 불륜관계를 이어 가던 의사 량 선생과 그에게 집을 빌려주었던 하층민 샤오마 사이의 어긋나는 인간관·교우관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며, 시마다 마사히코의 <사도(死都) 도쿄>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내의 체험을 통해 현대 도시인들의 불안과 불만을 묘사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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