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시운(35)
학원강사 출신 작가의 장편소설
십대 입말 살려 왕따문제 등 고발
십대 입말 살려 왕따문제 등 고발
〈컴백홈〉
황시운 지음/창비·1만1000원 “도대체, 내 부모는 왜, 이따위인가. 도대체, 내 친구들은 왜, 이따위인가. 도대체, 내 몸뚱이는 왜, 이따위인가.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따위인가. 어쩌자고 내 주변에는 온통, 나를 두들겨패고 짓밟고 모욕하는 인간들뿐인지 억울하다 못해 이제는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황시운(35)의 장편소설 <컴백홈>에서 주인공인 여고생 박유미는 어머니가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고무 호스에 등짝을 내맡긴 채 이런 상념에 잠긴다. 설명하면 이렇다. 태어날 때부터 초우량아였던 유미는 130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 때문에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갖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친구들의 ‘상납’ 요구에 부응하느라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서 돈을 얻거나 집 안에 숨겨 놓은 비상금이며 귀금속을 훔쳐낸다. 인용한 대목은 유미가 반지를 훔쳐 간 사실을 알아차린 엄마한테 무자비하게 두드려맞는 장면이다. 제 잘못도 있는 터라 묵묵히 견디던 유미는 어느 순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엄마를 들이받는다. 그러고는 “나자빠진 엄마를 향해 정신없이 발길질을” 퍼붓고는 집을 나간다. 학교 안팎에서 일상적으로 견뎌야 하는 모욕과 폭행에 비해 엄마의 매질이 더 가혹했던 것은 아니다. 이 순간 유미에게 호스를 휘두르는 엄마는 그 모든 모욕과 폭력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더는 그것들을 참고 견디지 않겠다는 의지를 유미는 엄마에 대한 대항 폭력으로 표출했던 것. 학원 수학 강사 출신인 작가는 십대 아이들의 입말과 습속을 실감나게 되살리면서, 어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잔인한 왕따와 학교폭력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린다. 이 소설을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으로 뽑은 심사위원들이 “평이한 듯한 소재에 살을 붙이는 소설적 디테일들이 성공적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평가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왕따와 학교폭력, 그리고 가출은 이 소설의 앞부분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유미의 출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다. 집을 나가 찜질방을 떠돌던 유미가 찾아간 곳은 미혼모 보호시설. 그의 ‘베프’인 지은이 들어 있는 곳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말을 더듬는 바람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그 때문에 마찬가지로 ‘따’였던 유미와 절친한 사이로 지냈던 지은은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화려한 외모와 깡으로 학년 짱에 오를 정도로 바뀐다. 지은은 겉으로는 유미에 대한 아이들의 폭행을 주도하면서도 단둘이 있을 때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허물없고 다정한 말을 주고받는다. 그런 지은이 뜻밖의 임신을 하게 되자 태아를 지우는 대신 아이를 낳겠다며 미혼모 보호시설을 찾아 들어갔던 것. 보호자도 없고 갈 곳마저 마땅치 않은 예비 미혼모들에게 ‘둥지’로 불리는 시설은 일견 든든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로 구실하는 듯하다. 임신을 계기로 부드러운 성격으로 바뀐 지은, 지은을 엄마처럼 붙좇는 열네 살짜리 ‘배불뚝이’ 하영,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노처녀 미영 등 시설에 들어 있는 이들과 부대끼면서 유미는 차츰 시설이 감춘 어두운 그림자를 눈치채게 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매끈하게 빛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수많은 크레이터가 존재하는 어느 먼 세계처럼, 둥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철저히 감춘 채 태연스레 바깥세상과 공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유미는 자신의 삶을 ‘이따위’로 만든 원흉으로 살을 지목하고 ‘거식증에 걸리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로아나’ 카페에 가입해 폭식과 구토를 되풀이한다. 둥지의 외양과 감추어진 본질 사이의 모순이 극에 이르렀을 때, 지은과 유미와 미영은 둥지를 탈출한다. “출산을 5주 남겨놓고 허무하게 아기를 흘려버린 노처녀와 출산을 겨우 두 달 앞둔 열일곱 살짜리 예비 미혼모, 그리고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며 줄였던 체중이 무서운 속도로 원상복귀중인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는 한동안 미영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들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소설 말미에서 유미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는데, 그가 결국 집으로 돌아갈지 말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제목은 서태지의 1995년 4집 앨범 타이틀곡에서 가져왔는데, 소설 속에서 서태지는 유미가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가상의 출구로 등장한다. “내게 달과 서태지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서태지와 함께 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는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온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내게 달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다른 세상’이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황시운 지음/창비·1만1000원 “도대체, 내 부모는 왜, 이따위인가. 도대체, 내 친구들은 왜, 이따위인가. 도대체, 내 몸뚱이는 왜, 이따위인가.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따위인가. 어쩌자고 내 주변에는 온통, 나를 두들겨패고 짓밟고 모욕하는 인간들뿐인지 억울하다 못해 이제는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황시운(35)의 장편소설 <컴백홈>에서 주인공인 여고생 박유미는 어머니가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고무 호스에 등짝을 내맡긴 채 이런 상념에 잠긴다. 설명하면 이렇다. 태어날 때부터 초우량아였던 유미는 130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 때문에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갖은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친구들의 ‘상납’ 요구에 부응하느라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서 돈을 얻거나 집 안에 숨겨 놓은 비상금이며 귀금속을 훔쳐낸다. 인용한 대목은 유미가 반지를 훔쳐 간 사실을 알아차린 엄마한테 무자비하게 두드려맞는 장면이다. 제 잘못도 있는 터라 묵묵히 견디던 유미는 어느 순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엄마를 들이받는다. 그러고는 “나자빠진 엄마를 향해 정신없이 발길질을” 퍼붓고는 집을 나간다. 학교 안팎에서 일상적으로 견뎌야 하는 모욕과 폭행에 비해 엄마의 매질이 더 가혹했던 것은 아니다. 이 순간 유미에게 호스를 휘두르는 엄마는 그 모든 모욕과 폭력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더는 그것들을 참고 견디지 않겠다는 의지를 유미는 엄마에 대한 대항 폭력으로 표출했던 것. 학원 수학 강사 출신인 작가는 십대 아이들의 입말과 습속을 실감나게 되살리면서, 어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잔인한 왕따와 학교폭력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린다. 이 소설을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으로 뽑은 심사위원들이 “평이한 듯한 소재에 살을 붙이는 소설적 디테일들이 성공적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평가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왕따와 학교폭력, 그리고 가출은 이 소설의 앞부분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유미의 출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다. 집을 나가 찜질방을 떠돌던 유미가 찾아간 곳은 미혼모 보호시설. 그의 ‘베프’인 지은이 들어 있는 곳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말을 더듬는 바람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그 때문에 마찬가지로 ‘따’였던 유미와 절친한 사이로 지냈던 지은은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화려한 외모와 깡으로 학년 짱에 오를 정도로 바뀐다. 지은은 겉으로는 유미에 대한 아이들의 폭행을 주도하면서도 단둘이 있을 때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허물없고 다정한 말을 주고받는다. 그런 지은이 뜻밖의 임신을 하게 되자 태아를 지우는 대신 아이를 낳겠다며 미혼모 보호시설을 찾아 들어갔던 것. 보호자도 없고 갈 곳마저 마땅치 않은 예비 미혼모들에게 ‘둥지’로 불리는 시설은 일견 든든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로 구실하는 듯하다. 임신을 계기로 부드러운 성격으로 바뀐 지은, 지은을 엄마처럼 붙좇는 열네 살짜리 ‘배불뚝이’ 하영,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노처녀 미영 등 시설에 들어 있는 이들과 부대끼면서 유미는 차츰 시설이 감춘 어두운 그림자를 눈치채게 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매끈하게 빛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수많은 크레이터가 존재하는 어느 먼 세계처럼, 둥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철저히 감춘 채 태연스레 바깥세상과 공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유미는 자신의 삶을 ‘이따위’로 만든 원흉으로 살을 지목하고 ‘거식증에 걸리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프로아나’ 카페에 가입해 폭식과 구토를 되풀이한다. 둥지의 외양과 감추어진 본질 사이의 모순이 극에 이르렀을 때, 지은과 유미와 미영은 둥지를 탈출한다. “출산을 5주 남겨놓고 허무하게 아기를 흘려버린 노처녀와 출산을 겨우 두 달 앞둔 열일곱 살짜리 예비 미혼모, 그리고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며 줄였던 체중이 무서운 속도로 원상복귀중인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는 한동안 미영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들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소설 말미에서 유미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는데, 그가 결국 집으로 돌아갈지 말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제목은 서태지의 1995년 4집 앨범 타이틀곡에서 가져왔는데, 소설 속에서 서태지는 유미가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가상의 출구로 등장한다. “내게 달과 서태지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서태지와 함께 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는 지난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온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내게 달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다른 세상’이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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