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케 두셀 멕시코 메트로폴리타나 자치대 교수
‘해방철학’ 창시 엔리케 두셀 교수 인터뷰
자유주의, 시장 내세워 민주주의 무력화시켜
공동체주의는 다른 공동체와 소통 못해 약점
“국가, 주민자치 지원을…전자 민주주의 주목”
자유주의, 시장 내세워 민주주의 무력화시켜
공동체주의는 다른 공동체와 소통 못해 약점
“국가, 주민자치 지원을…전자 민주주의 주목”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인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취지로 2001년 첫발을 디딘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처음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포퓰리즘 딱지를 붙이긴 하지만, ‘좌파 도미노’란 이름으로 브라질·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에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다. 현실 속 실질적인 대안운동에 끊임없이 밑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 담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니발 키하노, 월터 미뇰로 등과 함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학자이자 ‘해방철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엔리케 두셀(사진) 멕시코 메트로폴리타나 자치대 교수가 최근 고려대 문과대학,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철학연구소, 한국사회연구소 등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두셀은 “민중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혁명”이라며 “발전된 전자 매체 등이 민중의 성숙과 참여를 확대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는 서구가 주도해서 만든 근대 세계가 식민지배로부터 시작됐으며, 근대성의 극복은 결국 식민성의 극복과 다름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두셀의 해방철학은 ‘정복하는 자아’로부터 나오는 서구의 근대적 사고를 뒤집어, 가부장주의의 희생양인 여성, 종속국가, 황폐화된 지구를 상속받을 미래 세대 등 억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뼈대다.
두셀은 서구 정치사상의 주요 쟁점인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해방철학을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복과 지배로 나아간 서구적 보편주의를 비판하지만, 합리성·이성 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전지구적 공동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새로운 보편주의를 찾고자 한다. 특수주의로 흐르는 것은 그 어떤 보편적인 가치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셀은 인간은 계약 이전부터 이미 사회적인 존재인데, 자유주의는 인간을 고독하고 자유로운 원자로 먼저 상정한 뒤에 사회계약을 맺게 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전쟁 상태와도 같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적 소유’를 뼈대로 한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모든 교환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물신숭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셀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조해 다른 공동체들과 소통할 수 없게 만드는 공동체주의 역시 비판한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외부에 있는 존재에 대해 차별과 배제를 휘두르게 되며, 결국 개별적인 특수주의에 머무를 뿐 결코 보편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서 두셀이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성이다. 여기서 국가는 근대 부르주아 국민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변화시키는” 구실을 하는 존재다. 소통하지 못하는 공동체주의는 국가의 구실을 약화시키고, 자유주의는 시장주의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킨다. 두셀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엘리트 계층이 대표를 관료적으로 떠맡는 제도”라며 “관료 시스템, 정당이 없어지고 민중이 직접 대표가 될 수 있도록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민중이란 누구인가? 두셀은 민중에게 어떠한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기존 정치 시스템에서 차별받고 배제됐던 희생자들이 윤리적 가치에 따른 요구를 펼 때 그들은 민중이 된다고 봤다.
그렇다고 참여에 대한 요구가 곧바로 직접 민주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두셀은 “대의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가 민중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베네수엘라나 멕시코시티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 등을 사례로 들었다. 10여년 전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제기된 민주주의 전략에 따라 헌법을 통해 주민 자치권을 강화했던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6만여개의 주민회의(Community Council) 기구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예산의 결정부터 집행까지 모두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곧 민중이 참여하는 국가가 민중을 위해 제도를 바꿔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두셀은 이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심장부에서도 각종 비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민중은 참여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특히 두셀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아랍 국가에서 일어난 혁명에 자극을 받아 스페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일어날지 그 누가 알았겠느냐”며 “각종 전자 매체의 발달로 ‘전자 민주주의’까지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에 잘 적응했지만, 지금처럼 계속 가속페달을 밟았다가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그렇다고 참여에 대한 요구가 곧바로 직접 민주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두셀은 “대의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가 민중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베네수엘라나 멕시코시티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 등을 사례로 들었다. 10여년 전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제기된 민주주의 전략에 따라 헌법을 통해 주민 자치권을 강화했던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6만여개의 주민회의(Community Council) 기구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예산의 결정부터 집행까지 모두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곧 민중이 참여하는 국가가 민중을 위해 제도를 바꿔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두셀은 이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심장부에서도 각종 비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민중은 참여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특히 두셀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아랍 국가에서 일어난 혁명에 자극을 받아 스페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일어날지 그 누가 알았겠느냐”며 “각종 전자 매체의 발달로 ‘전자 민주주의’까지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에 잘 적응했지만, 지금처럼 계속 가속페달을 밟았다가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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