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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7살 소녀, 엉겁결에 캄보디아 가이드 되다

등록 2011-06-10 20:37

내 이름은 망고 추정경 지음/창비·9500원
내 이름은 망고 추정경 지음/창비·9500원
사라진 엄마 일 떠맡은 수아
닷새간 현지 역사·유적 탐방
다문화 인물들이 재미 더해
창비청소년문학상의 4번째 모험은 캄보디아다. 2007년 첫 수상작 <완득이>(1회, 김려령)부터 <위저드 베이커리>(2회, 구병모) <싱커>(3회, 배미주)까지…. 이 상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매년 작품의 완성도나 장르의 파격 등 여러 면에서 한국 청소년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모험을 해왔다. 그런 기대감 속에 선정된 추정경씨의 4회 수상작 <내 이름은 망고>는, 집과 학교와 학원을 훌쩍 뛰어넘어 독자들을 캄보디아라는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가이드는 수아라는 여고생이다. 그는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캄보디아에 왔다. 이름 ‘수아 리’가 캄보디아어로 망고를 뜻하는 ‘스와이’와 비슷해 별명이 망고다. 엄마는 한국 관광객 여행가이드로 생계를 꾸려 가는데, 우울증 때문에 그마저도 위태롭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사라진다. 뒤이어 엄마 대신 닷새 동안 가이드 노릇을 떠맡아야 하는 ‘난감한 현실’이 들이닥친다. 악재는 계속된다. 수아한테는 쩜바라는 앙숙이 있다. 머리채를 붙들고 흙바닭을 뒹군 ‘구원’도 못 풀었는데… 둘은 함께 일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꾸역꾸역 먹여주는 어른스러움이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는 점에서, 수아 엄마는 반면교사형 부모다.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책임감 없는 부모, 그렇게 찾아오는 사춘기의 ‘우기’. 수아가 등에 지고 있는 삶의 문제들은, 성장소설의 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열일곱살 인생을 캄보디아에 뚝 떨어뜨려 놓은 과감함으로 인해, 그런 전형적인 설정들마저 공감 획득을 위한 ‘안전장치’로 읽힌다.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로 대표되는 문화유적과 슬픈 역사의 나라다. 수아가 맞닥뜨린 여행가이드라는 상황은 자연스레 그 소개로 이어지는데, 고만고만한 고민에 쪼그라든 청소년들의 시야를 넓혀줄 듯싶다.

‘해외 올 로케이션’을 표방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이국적인 설정과 막대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쓴맛’을 보는 이유는 보통 하나다. 비주얼을 받쳐 줄 이야기와 구성의 힘이 달리기 때문이다. 보여줄 ‘그림’이 없는 소설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 이름은 망고>는 잘 짜인 사건들을 통해 소재주의와 스케일의 함정을 피해간다. 사라진 엄마, 연락이 닿지 않는 아빠, 수아의 기억 속에 묻힌 비밀 같은 미스터리와 반전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또 한국인 아빠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용수가 되겠다는 쩜바, 한국을 좋아해서 ‘우스꽝스러운 한국말’이 적힌 구제 티셔츠를 노상 입고 다니는 쏙천 등 정겨운 인물들은 ‘다문화’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수아는 닷새 동안 엄마의 이름인 ‘지옥’의 삶을 살고 나온다. 오직 ‘현실도피’가 꿈이었던 소녀는 이제, 엄마와 손을 맞잡고 순간순간을 이겨내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주변과의 갈등이 해소되고, 자기 자신도 좋아하기 시작한다. 익을수록 달고 부드러워지는 망고처럼, 성장통을 통해 크게 한뼘 자란 것이다.

<완득이>는 2008년 출간 첫해 20만부를 돌파했고, 연극과 영화로 옮겨졌다. <위저드 베이커리>와 <싱커> 역시 큰 화제를 낳았다. <내 이름은 망고>가 이런 성공을 이어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블루오션’이라 불릴 정도로 큰 수요에 비해 작품과 작가가 부족한 청소년문학계에는 올해도 단비가 내렸다. 중학생 이상.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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