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사슬에서 풀리다 해방기 책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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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초, 서울역 운송창고를 찾은 한글학자들이 민족과 더불어 해방된 책을 ‘발견’하고는 감개무량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증거물로 빼앗긴 조선어학회의 한글사전 원고 뭉치(50여책, 1만5천쪽 분량)를 창고에서 어렵사리 찾아냈다.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던 <조선말큰사전>(1947)의 기초자료는 이렇게 사슬에서 벗어났다.
책의 역사를 주로 연구하는 저술가 이중연(45)씨가 새로 쓴 <책, 사슬에서 풀리다 해방기 책의 문화사>(혜안 펴냄)는 해방 직후 1940년대에 나타난 글쓰기, 책읽기, 그리고 출판 문화의 흐름을 추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책들의 역사를 당시 책과 출판통계, 신문·잡지 기사 등을 통해 책의 한 시대를 되짚는 책의 문화사다.
해방 직후엔 ‘한해 동안 1천종의 책 출간’을 “빛나는 성과”로 꼽았던 시절이었고 전문출판인들이 여럿 생겨나고 마케팅이나 광고가 없어도 독자들이 먼저 책을 알아보고 찾아 좋은 책들은 초판이 매진되던 시절이었다. 현암사·을유문화사 등 요즘도 활동하는 출판사들의 옛 활동을 엿볼 수 있다.
1945~49년의 출판 흐름을 지은이는 크게 보아 △1945~46년 “좌익 팸플릿의 시기” △1947년 ”사상의 세계에서 문학의 세계로” △48~49년을 “문학을 넘어 열린 책의 지평”으로 나눈다. 해방 직후 ‘정치선동’을 중시한 좌파와 ‘계몽’을 중시한 우파의 출판 경향이 크게 분화되어 나타났으며, 정치바람이 다소 잦아든 뒤에 문학과 사회과학 등 다양한 책의 종들이 출현했다고 지은이는 정리한다.
지은이는 이미 <‘책’의 운명 조선~일제강점기 금서의 사회·사상사>(2001)을 낸 바 있으니, 이 책은 그 후속편이라 볼 수도 있겠다. 이씨는 다음번 저술 대상으로 ‘헌책방의 문화사’를 겨냥하고 있다고 밝힌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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