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조로증 걸린 ‘늙은 자식’ ‘어린 부모’ 인터뷰하다

등록 2011-06-17 21:12

80살 겉모습 가진 17살 아름이
탄생담 써 34살 부모에 선물
첫 장편서도 ‘기원 서사’ 그려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창비·1만1000원

김애란(31·사진)이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80년대산 문인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 2000년대 문단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애란은,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문단 선배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꾸준히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사이 <달려라 아비>(2005)와 <침이 고인다>(2007) 두 권의 소설집을 냈고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창작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피해 갈 수 없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첫 장편이라는 관문이 그것이었다. 김애란이 좋은 단편 작가라는 사실은 알겠다, 그런데 그가 뛰어난 장편 역시 쓸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잡지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내놓은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에 대한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웅변하는 작품이다. 올 상반기에 나온 장편 가운데 주저 없이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에 이 매력적인 이야기의 핵심이 들어 있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 한아름은 열일곱살 소년이지만, 남들보다 빨리 늙는 조로증에 걸린 탓에 여든살 노인의 겉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 그의 부모인 한대수와 최미라는, 아름의 조로증에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듯, 나란히 열일곱 이른 나이에 일찌감치 부모가 된 이들. 소설은 열일곱살 아름이 자신의 잉태에서부터 탄생과 성장에 이르는 이야기를 쓰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우등상도 학사모도 부모에게 선물로 드릴 수 없는 아름이가 대신 ‘이야기’를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내년 생일 때까지 원고를 완성하는” 목표 아래 부모님을 인터뷰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김애란(31)
김애란(31)
“뭔가 물으면 아버지는 사건 위주로 짧게 대답하고, 어머니는 자신의 감상을 구구절절 보탰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겹치고 어긋나고 어그러져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폭발 직전의 우주가스처럼 아스라이 출렁였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자신의 탄생담을 엮고자 하는 아름의 모습에서는 어쩐지 작가의 초기 단편 <달려라 아비>와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가 떠오른다. 기원의 서사라는 점에서 이 장편은 위의 두 단편과 통하는 셈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묘미는 외양만큼이나 의젓하고 낙천적인 소년 아름과 그의 철부지 부모가 연출하는 부조화와 아이러니에서 온다. 아름이는 조로와 이른 죽음이라는 운명을 상대로 씨름하느라 속이 깊어진데다 다양한 책을 읽는 것으로 학교 교육을 대신하면서 한층 성숙하고 지혜로워진다. 반면 이른 나이에 ‘사고’를 치는 바람에 졸지에 어른이 된 부모는 서투르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나는 식성 좋고 혈기왕성한 아버지를 손자 보듯 흐뭇하게 바라봤다”와 같은 문장에서 확인되는바 이 소설이 뿜어내는 뜻밖의 따뜻한 유머 감각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구도에 말미암은 바 크다.


아름이 불편한 심신으로 자신의 탄생담을 글로 옮기는 동안 그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성금 모금 방송에 출연하고, 그 방송을 본 동갑내기 여자아이 서하와 속 깊은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게 되며, 서하를 상대로 싹트던 풋풋한 연정이 뜻밖의 암초에 부닥쳐 좌초한 다음, 시력을 잃고 마침내는 죽음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운명을 채 수락하지 못한 아름이 어쩔 수 없이 절망과 분노를 폭발하듯 분출하는 장면이 없지 않지만, 그의 태도는 시종 담담하고 어른스럽다. 가령 두 눈이 완전히 안 보이게 되는 사태를 기술하는 소설의 문장은 이러하다. “첫눈이 왔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됐다”

자신이 쓴 이야기를 부모가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름의 의식은 꺼져 가는데, 에필로그도 모두 끝난 소설 말미에는 그가 쓴 이야기 ‘두근두근 그 여름’이 부록처럼 덧붙여져 있다. 아름의 부모가 처음 몸을 섞고 아름을 잉태하던 순간을 그린 그 이야기에서 “나뭇잎 하나가 어머니의 손등 위로 살포시 내려앉”고, 어디선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로 바람이 불어오는 장면은 한 아이의 탄생에 자연과 우주 전체가 관여하는 ‘우주의 하모니’를 보여준다. 그것은 아울러 죽음이 끝이나 단절이 아니라 탄생과 출발의 거울상일 수 있다는, 모종의 희망의 메시지 역시 전달해 주는 듯하다.

첫 장편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작가는 “장편 쓰기의 기술적 감각을 익힌 것 같다”며 “단편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되도록이면 장편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