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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종교, 무조건 믿으라면 의심하라

등록 2011-06-24 20:42

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지음/현암사·2만원
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지음/현암사·2만원
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지음/현암사·2만원
사회에 기여하는 종교, 깨달음 강조
동서양 사상가 등 60명 사유 훑어
디트리히 본회퍼는 1943년 반나치 저항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어느 모로 보나 ‘종교적’이지 않았던 그들은 감옥의 힘든 삶이나 연합군의 폭격 속에서도, 심지어 사형선고를 받고도 결코 ‘종교적 위안’에 기대지 않았다. 루돌프 불트만, 파울 틸리히 등과 함께 20세기 대표적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본회퍼는 비종교적이거나 탈종교적이었던 감방 동기들을 만나며 비로소 종교에 대한 해석을 고민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일상에서 종교와 마주칠 기회는 많다.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는 붉은 네온 십자가 때문에 불면의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종교는 구원의 열쇠일 수 없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지하철역 출입구까지 바꿔가며 진행되는 초대형 교회의 신축 공사로 행정소송을 벌여야 하는 지역 주민에게도 마찬가지다.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비교종교학)의 <종교, 심층을 보다>는 “종교가 개인이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횃불이나 등대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어왔는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오히려 문제 자체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도발적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아울러 한국에서 점점 종교의 필요성을 부정하거나 종교를 버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종말론이 판치고 자기 종교에 매몰된 이들이 지탄받는 요즘, 이제 종교를 버리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오 교수가 책 <종교, 심층을 보다>에서 내리는 결론은 ‘아니오’다. 지은이는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종교의 ‘부작용’은 종교라는 이름의 한 지붕 아래 ‘심층 종교’와 공존하는 ‘표층 종교’의 썩은 열매라고 주장하고 있다. 표층 종교가 심층 종교로 깊어지면 종교는 여전히 인간과 사회에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메시지다.

지은이에 따르면 심층 종교와 표층 종교를 나누는 기준은 꽤 간단하다. 종교의 두 얼굴을 맞닥뜨렸을 때, 무조건적 ‘믿음’을 강조한다면 이는 표층 종교다. 심층 종교는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지은이가 소개한 ‘도마복음’을 보면 예수 역시 ‘나를 믿으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예수는 “여러분 자신을 깨달아 아십시오”라며 오직 ‘그노시스’(gnosis), 곧 ‘깨달음’을 강조했을 따름이다. 지금도 개신교 일각에서는 4대 복음서에 속하지 않는 도마복음을 인정하지 않지만, 지은이는 도마에 대해 “그리스도교에서 잃어버리거나 등한시되던 심층적 가르침을 되살리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이 책에서는 도마 등 60명의 동서양 사상가와 철학자, 성인의 삶을 통해 그들이 깨달음에 이른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 그리스·로마의 철학자는 물론 힌두교 ‘아드바이타 베단타’ 이론을 세운 인도의 사상가 샹카라와 인도 자이나교 창시자 마하비라, 비교적 최근까지 활동한 마르틴 부버와 에리히 프롬, 디트리히 본회퍼 등 ‘인류의 스승’이라 불릴 만한 이들의 지적 사유를 한 권으로 모두 만나는 것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만 분명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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