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범신
39년차 박범신의 39번째 장편
‘말굽’으로 충동 살인하는 `나’
자본주의가 키운 폭력성 고발
“맷값폭행 사건이 소설 모티브”
‘말굽’으로 충동 살인하는 `나’
자본주의가 키운 폭력성 고발
“맷값폭행 사건이 소설 모티브”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지음/문예중앙·1만3000원 박범신(65·사진)의 신작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폭력의 연원과 본질에 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살인에 관한 긴 보고서’를 자처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알 수도 없고 스스로 제어할 수도 없는 폭력의 충동으로 여러 건의 살인을 저지른다. 그의 손에 돋아나 제멋대로 날뛰며 희생자의 두개골을 박살내곤 하는 말굽은 그의 내면에 자리잡고 그를 숙주 삼아 활동하는 폭력 바이러스를 상징한다. “어떤 돈 많은 사람이 2000만원을 ‘맷값’으로 내놓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사건이 있었죠? 저한테는 그게 아주 큰 정서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재벌 회장이 제 아들의 복수를 한답시고 깡패들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했던 사건보다 더 큰 충격이었어요. 우리는 돈을 내고,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릴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구나, 하는 무서운 깨달음이 저를 매우 괴롭혔습니다. 이번 소설은 그 충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2일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이번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책에 붙인 ‘작가의 말’에서는 “번지르르한 자본주의 문명 뒤에 은밀히 장전돼 있는 폭력성”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소설은 주인공 ‘나’가 운악산 아래 자리잡은 5층짜리 건물 ‘샹그리라’에 찾아드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4년 동안 갇혀 있던 교도소에서 풀려난 뒤 십여년을 노숙자 신세로 남해안을 떠돌던 그는 누군가의 부름에 응하듯 제가 살던 고향 도시로 향하는 밤 기차에 올랐던 터. 그가 옥고를 치르고 노숙자처럼 떠돌았던 사연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차차 드러나거니와, “이 도시로 돌아오게 될까 봐 두려워 떠돌던 세월”을 뒤로하고 그토록 두려워하던 고향으로 돌아온 까닭은 역시 말굽의 뜻에 따른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제 살던 집터에 들어선 샹그리라에서 그는 기이한 풍모의 노인과 마주친다. “주름살투성이의 얼굴과 뛰어나게 발달된 젊은 몸매”가 기괴한 부조화를 이루는 그는 샹그리라의 주인이며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사장님이라 부른다. 그는 초면인데다 얼굴 반쪽이 화상으로 일그러져 흉측한 용모를 지닌 주인공을 서슴없이 건물 관리인으로 채용한다. 이로써 소설의 핵심 서사인 이사장과 주인공 사이의 대결 구도가 가능해지게 된다.
소설은 이사장과 주변 사람들의 정체에 대한 탐구라는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과거사가 교차되면서 그 둘이 하나로 수렴되는 구조를 보인다. 이사장은 샹그리라 위쪽 산비탈에 은밀하게 들어선 종교단체 ‘명안진종’의 수장이었으며, 샹그리라에 거주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그의 부하들이었던 것. 한편 주인공 ‘나’는 과거 샹그리라 자리에 있던 무허가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식용 개를 잡아 파는 일을 했으며, 당시 운악산에 있던 대북 특수부대 장교들이 그 주 고객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포악했고 아직 어린 ‘나’에게도 씻지 못할 심신의 상처를 안겼던 부대장이 지금의 이사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의 대결 구도에는 나름의 명분이 주어진다.
두 사람의 대결에 한층 타당한 구실을 제공하는 것은 여주인공 여린이다. 샹그리라 5층의 원룸에 기거하는 맹인 안마사 여린은 과거 주인공의 이웃에 살던 소녀였으며 주인공과는 신뢰와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그러나 여린의 집에 수상쩍은 화재가 발생하고, 여린에 이어 그 아버지를 구하려던 주인공은 화마에 휩싸여 화상을 입은 것은 물론 방화범으로 지목되어 감옥살이까지 해야 했던 것. 주인공에게는 “내가 살아 있어야 할 단 하나의 이유”였던 여린이 지금은 이사장의 노리개로 전락해 있는 현실은 주인공의 분노를 자극하고 말굽을 날뛰게 만든다. 결국 이사장과의 대결 과정에서 그는 숱한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그 폭력이 ‘탄생 이전에서 온 슬픔’을 수반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이 주인공의 폭력을 단순한 분노와 정의감의 분출과는 구분되게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탄생 이전의 슬픔이 우리의 욕망을 폭력적으로 밀어붙이고, 자본주의 제도는 그에 에스컬레이터를 제공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본성에 반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1973년 등단해 작가 생활 39년째를 맞은 작가의 39번째 장편소설이다. 오는 8월 말로 20년 동안 봉직해 온 명지대 문창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하는 작가는 다음주 금요일 출판기념회를 겸한 퇴임 기념 잔치를 마련한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박범신 지음/문예중앙·1만3000원 박범신(65·사진)의 신작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폭력의 연원과 본질에 관해 질문하는 소설이다. ‘살인에 관한 긴 보고서’를 자처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알 수도 없고 스스로 제어할 수도 없는 폭력의 충동으로 여러 건의 살인을 저지른다. 그의 손에 돋아나 제멋대로 날뛰며 희생자의 두개골을 박살내곤 하는 말굽은 그의 내면에 자리잡고 그를 숙주 삼아 활동하는 폭력 바이러스를 상징한다. “어떤 돈 많은 사람이 2000만원을 ‘맷값’으로 내놓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사건이 있었죠? 저한테는 그게 아주 큰 정서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재벌 회장이 제 아들의 복수를 한답시고 깡패들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했던 사건보다 더 큰 충격이었어요. 우리는 돈을 내고,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릴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구나, 하는 무서운 깨달음이 저를 매우 괴롭혔습니다. 이번 소설은 그 충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결에 한층 타당한 구실을 제공하는 것은 여주인공 여린이다. 샹그리라 5층의 원룸에 기거하는 맹인 안마사 여린은 과거 주인공의 이웃에 살던 소녀였으며 주인공과는 신뢰와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그러나 여린의 집에 수상쩍은 화재가 발생하고, 여린에 이어 그 아버지를 구하려던 주인공은 화마에 휩싸여 화상을 입은 것은 물론 방화범으로 지목되어 감옥살이까지 해야 했던 것. 주인공에게는 “내가 살아 있어야 할 단 하나의 이유”였던 여린이 지금은 이사장의 노리개로 전락해 있는 현실은 주인공의 분노를 자극하고 말굽을 날뛰게 만든다. 결국 이사장과의 대결 과정에서 그는 숱한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그 폭력이 ‘탄생 이전에서 온 슬픔’을 수반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이 주인공의 폭력을 단순한 분노와 정의감의 분출과는 구분되게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탄생 이전의 슬픔이 우리의 욕망을 폭력적으로 밀어붙이고, 자본주의 제도는 그에 에스컬레이터를 제공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본성에 반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1973년 등단해 작가 생활 39년째를 맞은 작가의 39번째 장편소설이다. 오는 8월 말로 20년 동안 봉직해 온 명지대 문창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하는 작가는 다음주 금요일 출판기념회를 겸한 퇴임 기념 잔치를 마련한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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