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세상사 얄팍하고 빤하게 돌아갈 때, 하늘 높아가고 바람 서늘해질 때, 가슴 한구석 어딘가 허전해올 때… 문득 떠오르는 옛 연인처럼 시를 찾게 되는 까닭은 뭘까. 시로 위안을 얻는다면 아마도 가슴속에 얹혀 풀어내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시 읽기만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끼곤 한다. 알 듯 모를 듯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기에는 일상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은 이럴 때 딱인 책이다.
‘대중철학자’로 불리는 강신주는 시를 철학으로 풀어낸다. 지난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 이어 두번째로 시인과 철학자를 짝지어 놓았다. ‘시 읽기’도 어려운데 ‘철학적’이기까지 하니 범접하지 못할 책이라 두려울 법도 하다. 이런 걱정은 기우다. 책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대중강연의 축적물이어서 쉬울 수밖에 없다. 시와 철학을 적당히 버무려 맛있게 대화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시를 독해하고 철학적 사유로 풀어낸다. 이를테면 채호기의 시 ‘애인이 애인의 전화를 기다릴 때’를 읊으며 마셜 매클루언의 ‘뜨거운 미디어, 차가운 미디어’를 떠올리고, 백석의 연인 나타샤를 설명하면서 나카무라 유지로의 감각론을 연결짓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강신주는 일상이 왜 무겁고 우울한지, 왜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지를 궁극적으로 풀어낸다. 시에서 삶을 목격하고, 철학으로 삶의 비밀을 이해하면서, 가을을 앓는 이들이라면 충분한 위로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동녘·1만6000원.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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