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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도시’ 한가운데서 진짜 마르크스주의를 만나다

등록 2005-07-14 20:12수정 2005-07-14 20:18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앤디 메리필드 지음. 남청수 등 옮김. 시울 펴냄. 1만7000원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앤디 메리필드 지음. 남청수 등 옮김. 시울 펴냄. 1만7000원
앵겔스·벤야민등 사상가 8명 불러 진보와 모순의 변증법적 두 모습 ‘자본의 시대’ 우리 비추는 ‘도시’ 매개로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 찬찬히 드러내
칼 마르크스는 식민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식민지 동양사회는 정체된 비합리적 사회로 여긴 탓에 ‘유럽중심주의자’로 비판받아야 했다. 이에 더해 그의 도시중심주의도 비판 대상이 된다. 문제의 발언은 이랬다. “도시화는 적지 않은 수의 인구를 ‘백치’와 같은 지방의 삶에서 구출해냈다.” <공산당선언>에서 한 말이다. 일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산 그에게 도시 변두리는 “미개한 지역”으로, 봉건질서를 물리친 도시화는 곧 “문명화”로 여겨졌다.

이와는 정반대로, 상당수의 사회주의 혁명은 도시 중심이 아닌 농촌이나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일어났다. 대부분 혁명 지도자들은 도시보다 농촌을 혁명의 친구로 더욱 신임하지 않았던가? 또 여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산은 부르주아와 소작농 집단을 프롤레타리아화하고, 도시는 프롤테라이아들을 부르주아화할 수 있다”며 도시를 험담하지 않았던가? 사정이 이러하니 마르크스주의와 도시주의(도시성·urbanism)는 썩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미국 클라크대학 앤디 메리필드 교수(지리학과)는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시울 펴냄)에서 이런 인식을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라며 오히려 진짜 마르크스주의의 실체 보여주기를 시도한다. 마르크스주의야말로 근대적 도시 생활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바라보게 하는 “도시의 변증법(메트로폴리탄 변증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도시주의와 마르크스주의라는, 때로는 대립적으로 보이는 둘의 화해(융해) 가능성을 찾는 동시에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현대사회 읽기의 강력한 사상이라는 점을 찬찬히 드러내고 있다.

지은이가 ‘마르크스주의가 본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마르크스 선생부터 프리드리히 엥겔스, 발터 벤야민, 앙리 르페브르, 기 드보르, 마뉴엘 카스텔(후기엔 탈근대주의자로 변모), 데이비드 하비, 마샬 버먼까지, 곧 18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주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주요 사상가 여덟 명을 한 권의 책 속에 불러내어 그들이 살며 성찰했던 ‘도시’라는 공통의 창을 통해 그들을 되짚어보는 식이다. 여덟 명의 간략한 전기와 사상해설을 겸한 여덟 장은 엥겔스가 살았던 19세기의 멘체스터, 20세기 전반 벤야민의 파리, 르페브르·드보르의 1968년 혁명 전후 파리, 빈민가에서 산 버먼의 20세기 후반 뉴욕 등 대도시의 공간과 생활을 바라보는 여덟 빛깔의 ‘마르크스주의로 본 도시’ 또는 ‘도시주의로 본 마르크스주의’를 담아낸다.

현대 도시의 슬럼화를 ‘죽음의 손길’로 풍자한 한 카툰. 마르크스주의자 데이비드 하비는 빈민가를 없애는 것은 빈민가에 대한 이론의 진실을 밝힐 조건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거기에는 “빈민가는 나쁜 것이며 빈민을 그대로 둔 채 빈민가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 “정책은 불평등이 존재하는 도시의 토지 이용을 평형상태로 되돌릴 것이라는 암묵적 가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파악했다.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중에서.
현대 도시의 슬럼화를 ‘죽음의 손길’로 풍자한 한 카툰. 마르크스주의자 데이비드 하비는 빈민가를 없애는 것은 빈민가에 대한 이론의 진실을 밝힐 조건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거기에는 “빈민가는 나쁜 것이며 빈민을 그대로 둔 채 빈민가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 “정책은 불평등이 존재하는 도시의 토지 이용을 평형상태로 되돌릴 것이라는 암묵적 가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파악했다.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중에서.
도시주의에 건네는 화해의 손길


여덟 가지 이야기의 시작은 당연히 마르크스. 인간노동과 권력관계에 의해 태어났으면서도 그런 현실을 감춰버린 ‘물신성’과 19세기 진보와 모순을 동시에 담지한 대도시의 ‘변증법’을 제안한 이래, 물신성과 변증법은 도시의 일상 속에 꼭꼭 숨은 계급, 권력, 소외 등을 통찰하는 주요 틀거리가 됐다. 그리하여 그들의 눈에 비친 도시의 모습은 이렇다. 근대성의 이미지를 만드는 화려한 아케이드 쇼핑몰, 분주하게 오가는 익명의 근대적 남성과 여성들, 온갖 상업 이미지들로 뒤덮인 거리, 그리고 가난에 찌든 빈민, 공간의 식민화·상품화, 공간을 장악한 계급이익, ‘그들’에게 빼앗긴 그들만의 도시 공간 등…. 이런 성찰과 비판은 때로 우리의 도시 공간을 전유하자는 직접 행동으로 치닫기도 했다(드보르와 상황주의자들).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도시를 탈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긴 이야기는 시작도 되지 않았을 게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적 도시를 사랑”했노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얼마나 많은 도시주의자들이 벤야민, 르페브르, 혹은 드보르처럼 파리에 대해 그토록 친절하게 기술할 수 있을까?…혹은 버먼처럼 뉴욕의 거리에 관해 그토록 사랑스럽게 기술할 수 있을까?”

“후쿠야마는 똑똑히 봐 두라”

이런 도시의 애증은 도시가 지닌 두 얼굴에서 비롯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도시화는 ”파우스트적인 힘으로, 즉 창조적이지만 파괴적인, 문명적이지만 야만적인, 활동적이지만 불안정한 힘으로서” 비친다.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주의)은 “위장”이며 여전히 근대주의의 시대라고 믿는 지은이는 “(낡은 관계를 일소한 부르주아계급의 도시에서) 견고한 모든 것들은 대기 속으로 사라지고, 성스러운 모든 것은 세속적으로 변한다.…도시에서 우리는 멀쩡한 정신으로 진정한 삶의 조건…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한다. 도시야말로 근대사회의 진보와 모순의 총체적 집합소이며 자본의 시대를 사는 우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

지은이가 여덟 명의 사상가를 불러내어 정말 말하고 싶었던 바는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진보와 모순을 지닌 도시는 변증법적이고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이래 ‘프롤레타리아의 도시’로 결집하고 ‘산보자의 도시’로 흩어지고, 때로는 강고하고 때로는 유연했을지라도 그 비판과 실천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덟 명의 사상가는 “평범함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도망치지도 않았고, 확언과 확실성으로 맑스주의를 발전시켜 온 것도 아니다. 그들은 맑스주의의 결점을 정면으로 마주해 왔고, 그것과 함께 살아 왔다.”

‘다시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외치는 지은이는 이 책 곳곳에서, 특히 이야기를 정리하는 말미에서 진짜 마르크스를 제대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버릴 것은 “맑스는 동상이자 깃발이고, 교의이자 강제수용소이며, 정당 프로그램이자 신성한 정설”이라는 ‘우상화’이며, 그런 우상화를 버릴 때 세계의 두 얼굴을 통찰하는 “풍요로운 짜임새의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역사의 종언’을 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똑똑히 봐 두라.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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