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젠야> 주최 ‘동아시아 시민의 대화’ 토론회가 9일 오후 도쿄 메이지대 리버티타워의 한 강의실에서 열리고 있다.
“일, 전쟁책임 회피·우경화가 반일 초래”, 한-중-일 학자들 ‘반일’ 해법 모색
올해 한국·중국·일본 사이에서 최대의 화두가 된 ‘반일’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일본의 진보적 계간지 <젠야>(전야) 주최로 지난 9일 도쿄 메이지대 리버티타워에서 세 나라 중견 학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반일이란 무엇인가-동아시아 시민의 대화’라는 토론회가 그것이다.
첫 발표자인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철학)는 ‘응답불능의 일본인’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일본인들이 과거의 전쟁책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는 데서 반일의 뿌리를 찾았다. 그는 1960년대 중반 독일에서 나온 책들을 인용하며 60년대 독일과 전후 60년을 맞은 지금의 일본이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전후 독일인은 자신들의 과거와 직면하지 않은 채 경제부흥에 몰두해 ‘과거를 집단적으로 부인’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거센 비판이 제기된 뒤 독일은 과거를 극복하는 단계로 나아간 반면, 일본은 현재 주변국으로부터 또다시 전쟁책임을 추궁당하고 있음에도 응답불능의 상태에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다카하시 교수는 또 우익 정치인들은 독일이 나치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전쟁이 아니라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만 사죄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실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에선 특히 통일 뒤 정상들이 앞장서 폴란드 등 주변국의 희생에 대한 사죄를 끊임없이 표명했지만, 일본은 전쟁 책임자인 에이(A)급 전범들조차도 스스로 단죄하지 못한 채 책임을 모호하게 했고 전전과 단절을 하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결국 일본에서 반일의 의미는 일제의 잘못된 유산을 청산해 ‘다른 일본’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중국 출신의 왕쯔신 미야자키공립대 교수(교육학)는 “개인적으로 ‘반일’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낀다”며 “최근 중국인들의 시위는 전전의 일본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반성하지 않는 쪽으로 일본의 분위기가 역행하고 우경화하는 데 대한 항의이자 경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학생들이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게 아니라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에 나선 것이라며, 중국의 ‘애국무죄’라는 구호에 대한 일본의 비판 또한 오해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했다. 이 구호는 저명작가 루쉰이 192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희생당한 학생을 추도하면서 ‘학생들의 행위는 나라를 위한 것이므로 죄를 물을 수 없다’며 권력에 대한 저항을 외친 것이지,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는 임진왜란 때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분석하면서 한국에는 우익의 국수주의적 반일과 진보세력의 일본 우경화에 대한 우려 등 반일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각국이 민족주의적 관점에 서게 되면 연대가 가능하지 않고 반일 문제를 극복할 수도 없다며, 세 나라의 민주주의를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기성찰이 가능한 민주·평화세력들이 주도권을 행사해 연대해나가는 것이 반일을 넘어서고 동아시아 평화를 구축하는 지름길이라는 지적이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