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스마엘
나의 이스마엘
1%와 99%의 갈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99%가 99%의 물질적, 금전적인 부를 차지하면 과연 해결될 일인가? <나의 이스마엘>은 세상일이 즐거울 게 없는 심드렁한 12살 줄리와 심각하고 통찰력이 있는 고릴라 이스마엘의 대화 속에서 그 답을 찾아간다.
이스마엘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로 줄리의 지혜와 생각을 키워간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비극의 씨앗과 그 비극을 극복할 혁명의 길을 안내한다. 무엇보다 ‘부’의 정의를 바꿔내야 한다는 주장은 부의 승자 독식 사회에 울림과 위안을 주는 대목이다. 땅문서나 통장과 같이 자물쇠로 채울 수 있는 ‘부’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평안함이라는 ‘부’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스마엘은 모든 인류가 그렇게 해왔다고 가르치고 있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가르쳐준다. 이를 당연히 따라야 할까? 줄리의 대답이 궁금해지기 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건강한 공교육이라는 것 역시 허상이라고 이스마엘은 말한다. 학교는 ‘젊은 경쟁자들이 인력시장에 진입하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대니얼 퀸이 이 책을 쓴 것은 14년 전인 1997년. 인간 중심주의와 물질 중심주의의 지속이 어떤 결말을 낳을 것인지 꼭 예측한 것만 같다. 과연 새로운 혁명은 시작되는 것일까? 고릴라 이스마엘을 통해 지은이는 말한다. 그 혁명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져다 주는 ‘플러스 혁명’이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혁명은 누군가의 주도로 이뤄지지 않고, 목표로 하는 종결점이 없다고 말한다. 박희원 옮김/평사리·1만2000원.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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