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이 사는 섬
한봉지 글·박준우 그림/리젬·1만1000원
한봉지 글·박준우 그림/리젬·1만1000원
그리스 로마 신화를 ‘편식’하는 문화 때문일까. ‘거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조건반사적으로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토막을 떠올리게 된다. 제우스가 다른 형제들을 제압하고 신들의 신이 되는 데 도움을 준 ‘번개’를 만들어줬다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들, 오디세우스에게 눈이 찔린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 정도가 떠오르기 십상이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제주도 바다 저 너머 어느 섬에 외눈박이 거인이 살고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우리나라 이야기도 있다. 작가 한봉지씨의 <거인이 사는 섬>은 제주도에 남아 있는 1만8000여개의 설화 중 하나인 영등할멈 설화를 동화로 만든 책이다.
조랑말보다 크고 한라산보다 작은 외눈박이 거인이 살았다. 그는 거센 바람을 막아준다는 빌미로 해만 뜨면 밥을 달라고 소리를 쳤다. 사람들은 매일 물질을 해서 물고기를 갖다 바쳤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영등할멈의 도움으로 거인을 물리치게 된다. 영등할멈은 서구의 천사나 요정이 아닌 인간과 비슷한 몸집의 신이다.
그런데 외눈박이 거인에게 맞서는 토속적인 상상력이 기발하고 흥미롭다. ‘눈을 찔러’ 앞을 못 보게 하는 것 정도가 정석이겠지만, 이런 ‘서양적 상상력’과 다른 방법으로 거인을 쓰러뜨린다. 아이들에게 신화·전설·민담 같은 ‘설화’를 들려주는 이유가 재미와 모험심, 지혜의 고양에 있다면 이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덧붙여 이 책은 ‘전통의 이해’에도 도움을 준다. 제주 지역에는 현재까지 영등굿·연등제라는 제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 기원을 엿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음력 2월 초하루를 영등날이라고 부른다. 여신에게 소라와 고둥을 많이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 여신이 바로 외눈박이 거인으로부터 섬사람들을 구해준 영등할멈이다. 6~7살 이상.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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