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작가 최인훈씨가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자택에서 새로 나온 자신의 책 <바다의 편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선집 ‘바다의 편지’ 출간 최인훈
원로 작가 최인훈(76)의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선집이 출간되었다. 고려대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는 오인영 박사가 엮은 <바다의 편지>(삼인)가 그것이다.
이 책은 최인훈의 에세이와 소설에서 문명과 역사, 인간과 예술에 관한 작가의 사유를 담은 글들을 뽑아 싣고 작가가 2003년 <황해문화>에 발표한 단편 <바다의 편지>를 단행본으로는 처음 수록했다. 또 작가가 그 작품을 직접 낭송한 한 시간 가까운 분량의 시디를 책 뒤에 붙였다.
엮은이는 “최인훈의 역사 해석은, 그 자신이 인간이란 종의 일원(문명인)이며 물리적 지구 전체가 역사적 세계로 연결된 근대를 사는 존재(근대인)임을 강하게 자각하고 있는 한국의 지식인(한국인)이 ‘독자적으로 익힌 실험 요령’을 통해서 빚어낸 역사적 사유”라고 최인훈 사상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 2일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자택에서 만난 작가는 “역사학자가 내 작품 전부를 꼼꼼히 읽고 그 가운데서 추려낸 글들로 엮은 책이라서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며 “글쓴이로서도 보람을 느끼고 독자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땅의 구체적 생활의 문제 속에서 자연히 나온 사상, 스스로를 납득시키자면 어떤 이론 구축이 되는가를 말해 주는 하나의 케이스가 되는 그런 사상의 계절에 내가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작가는 자신의 사유가 한반도의 현실이라는 조건 속에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고투한 결과 생겨난 것임을 강조했다.
“다른 민족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엄청난 격동 속에 밥을 벌어먹고 생각을 하느라 정신없이 산 셈이에요. 한가지 다행인 것은, 나는 창작을 한다는 실험의 공방이 있었다는 거죠. 내 머릿속의 생각을 글로 써 봐서 실제로 들어맞는지를 큰돈 안 들이고 실험하는 원시적인 공방이라고나 할까요. 돌이켜 보면, 어려웠지만 그래도 생각에 매달릴 수 있는 행복한 생애였어요.”
그는 자신의 모든 소설이 사실은 하나의 연작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보면 대학 시절에 쓴 첫 소설 <두만강>에서부터 <바다의 편지>까지가 한 가지 주제랄까 풍경, 정신을 담은 일종의 연작인 것 같아요. 역사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예술은 예술로서 쉽사리 변하지 않는 시원성(始原性)을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나 하는 게 데뷔 이래의 화두였습니다. 결국 평생 한 가지 노래를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 단편 등 묶어 사상 조명
사학자 오인영 박사가 엮어
“한 사람이 우주보다 무거워”
틈날때 ‘광장’ 끊임없이 고쳐 그는 특히 공식적으로 그의 마지막 발표작인 단편 <바다의 편지>가 자신의 논리적 사유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바다의 편지>는 적의 공격으로 잠수정이 침몰하면서 숨진 수병의 혼백을 화자로 삼아 민족사와 인류사의 기억과 전망을 한데 버무린 실험적인 작품이다. “말하자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바다의 편지>에서 백골이 되어 누워 있는 것입니다. 바다로 뛰어내린 이명준의 선택을 두고 왜 자살했느냐 도피가 아니냐 하는 지적도 있지만, 현실에서의 도피와 작품 속 도피는 다른 것입니다. 이명준은 죽은 다음에도 최일선에서 바다 밑 보초를 서고 있는 셈이죠. 백골이 되어서도, 죽은 후에도 조국을 사랑하고 철학을 사랑하고 있달까요.” 틈날 때마다 <광장>을 끊임없이 고쳐 쓰고 있다는 작가는 “2차 한국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떤 유행이나 서양식 철학보다 앞서는 한국의 소박한 토착 철학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결론이 먼저 있고, 그걸 어떻게 명제화하느냐는 학자나 예술가가 할 일이죠. 너와 나의 피가 그렇게 값싸게 흘러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인간의 목숨은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숨은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보다 무거운 거예요.” 총선과 대선이 있는 ‘정치의 해’를 맞아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한 말씀을 청하자 그는 스코틀랜드 독립 논란에 관한 뉴스 이야기를 꺼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독립하고자 한다는 신문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깊은 철학적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혈서 써서 식민지 군대의 초급장교가 되겠다던 사람(=박정희)이 역대 통치자 중 인기가 몇째라느니 하는 감각과, 이 시점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독립하겠다는 감각은 확실히 다른 겁니다. 검은 안경 끼고 시청 앞에 나타나서 그 이전까지의 사회 질서를 모조리 깨부수는 식의 오두방정을 역사랍시고 살았지요. 그런 상황에서 학문이니 예술이니 철학이니를 한다는 건 뭐였는지, 내 괴로움은 그런 거였습니다.” 그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 주책바가지 노릇 했던 세력이 여전히 행세하고 그 후예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애국운동을 한 이들의 후예는 교육도 못 받고 돈도 없는 하층민이 된 이런 게 자유주의인가?”라며 “정말 지킬 건 안 지키고 지키지 말아야 할 것만 지키려 드는 우리 보수는 도대체 어떤 보수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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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편지>(삼인)
“지금 보면 대학 시절에 쓴 첫 소설 <두만강>에서부터 <바다의 편지>까지가 한 가지 주제랄까 풍경, 정신을 담은 일종의 연작인 것 같아요. 역사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예술은 예술로서 쉽사리 변하지 않는 시원성(始原性)을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나 하는 게 데뷔 이래의 화두였습니다. 결국 평생 한 가지 노래를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 단편 등 묶어 사상 조명
사학자 오인영 박사가 엮어
“한 사람이 우주보다 무거워”
틈날때 ‘광장’ 끊임없이 고쳐 그는 특히 공식적으로 그의 마지막 발표작인 단편 <바다의 편지>가 자신의 논리적 사유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바다의 편지>는 적의 공격으로 잠수정이 침몰하면서 숨진 수병의 혼백을 화자로 삼아 민족사와 인류사의 기억과 전망을 한데 버무린 실험적인 작품이다. “말하자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바다의 편지>에서 백골이 되어 누워 있는 것입니다. 바다로 뛰어내린 이명준의 선택을 두고 왜 자살했느냐 도피가 아니냐 하는 지적도 있지만, 현실에서의 도피와 작품 속 도피는 다른 것입니다. 이명준은 죽은 다음에도 최일선에서 바다 밑 보초를 서고 있는 셈이죠. 백골이 되어서도, 죽은 후에도 조국을 사랑하고 철학을 사랑하고 있달까요.” 틈날 때마다 <광장>을 끊임없이 고쳐 쓰고 있다는 작가는 “2차 한국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떤 유행이나 서양식 철학보다 앞서는 한국의 소박한 토착 철학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결론이 먼저 있고, 그걸 어떻게 명제화하느냐는 학자나 예술가가 할 일이죠. 너와 나의 피가 그렇게 값싸게 흘러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인간의 목숨은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숨은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보다 무거운 거예요.” 총선과 대선이 있는 ‘정치의 해’를 맞아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한 말씀을 청하자 그는 스코틀랜드 독립 논란에 관한 뉴스 이야기를 꺼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독립하고자 한다는 신문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깊은 철학적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혈서 써서 식민지 군대의 초급장교가 되겠다던 사람(=박정희)이 역대 통치자 중 인기가 몇째라느니 하는 감각과, 이 시점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독립하겠다는 감각은 확실히 다른 겁니다. 검은 안경 끼고 시청 앞에 나타나서 그 이전까지의 사회 질서를 모조리 깨부수는 식의 오두방정을 역사랍시고 살았지요. 그런 상황에서 학문이니 예술이니 철학이니를 한다는 건 뭐였는지, 내 괴로움은 그런 거였습니다.” 그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 주책바가지 노릇 했던 세력이 여전히 행세하고 그 후예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애국운동을 한 이들의 후예는 교육도 못 받고 돈도 없는 하층민이 된 이런 게 자유주의인가?”라며 “정말 지킬 건 안 지키고 지키지 말아야 할 것만 지키려 드는 우리 보수는 도대체 어떤 보수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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