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46)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
일제부터 이명박정부까지
도시빈민운동 역사 정리
“일해도 가난 못벗는 사회
결국 노동권 문제로 귀결”
도시빈민운동 역사 정리
“일해도 가난 못벗는 사회
결국 노동권 문제로 귀결”
‘가난의 시대’ 펴낸 최인기씨
흔히 한국 근현대사를 두고 ‘가난을 이겨낸 역사’라고 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사라진 적이 없었고, 생존을 위한 그들의 싸움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과거 올림픽과 월드컵, 주요20개국 정상회의 등을 앞두고 벌어졌던 대규모 노점 철거 시도가 올해에는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다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09년 벌어진 용산참사에서도 볼 수 있듯 ‘가난을 이겨낸 역사’를 뒤집어 보면, 삶의 터전을 초고층 빌딩에 내주고 쫓겨난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가 보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성공 신화의 역사는 있어도 훨씬 더 많은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가난한 이들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책이나 연구는 부족했다.
20년 넘게 빈민운동 활동가로 일해 온 최인기(46)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이 최근 써낸 <가난의 시대>는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책이다. 9일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그는 입을 떼자마자 ‘빈민열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1989년 폭력적 노점 단속에 저항해 분신한 이재식씨와, 2007년 노점 단속에 저항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붕어빵 노점상 이근재씨, 1995년 인천에서 노점 철거 저항 농성 중에 익사체로 발견된 장애빈민 이덕인씨 등. “이분들 개개인은 당장 자기 앞의 문제로 싸우다 스러져갔지만, 이들의 죽음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에서 ‘생존권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거리에 나가서 투쟁하는 것만큼 공부하고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최씨는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난 뒤 주변의 권유로 거리에 나가는 대신 도시빈민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빈민운동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언론인인 정동익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이 1985년에 쓴 <도시빈민연구> 말고는 체계적인 정리를 시도한 책을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
책 속에서 최씨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 오늘날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시기별 특징을 짚어가며 도시빈민의 역사와 빈민운동의 역사를 정리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오는 동안 서울의 인구는 245만명에서 550만명으로 두배로 늘었고,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는 2배 가까이로 늘어 1060만명이 됐다. 그러나 수출 위주의 고도성장 전략 속에서 안정적인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사람들은 철거민, 노점상 등이 되어 ‘도시빈민’을 형성했다. 그리고 1971년 급증하는 도시 과밀을 해소할 목적으로 경기도 광주로 집단이주된 도시빈민들이 일으킨 ‘광주대단지’ 사건은 빈민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본격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최씨는 빈민운동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서술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도시빈민운동은 크게 철거민운동과 노점상운동으로 나뉘어 전개됐다”고 말한다. 시대별로 보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사이에는 연세대 ‘빈민문제연구소’와 박형규 목사가 주도한 ‘수도권도시빈민선교회’ 등이 종교운동과 지역주민운동의 성격을 띤 빈민운동을 펼쳤다. ‘수도권’은 1979년 해체됐지만 김혜경, 제정구 등의 활동가들에 의해 그 취지는 계속 이어졌다.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이 펼쳐진 1980년대에 들어 철거민운동과 노점상운동이 본격화됐다고 한다. 특히 민간 자본에 막대한 이익을 약속하는 대신 세입자들에게 희생을 덮어씌우는 합동재개발 방식의 도입으로 1985년 ‘상계동투쟁’과 같은 대대적인 투쟁이 일어났다. 빈민들의 생계 수단인 노점상 역시 강제 철거와 이에 맞선 투쟁으로 그 운동이 격화됐다.
2000년대에는 ‘노숙인 당사자 운동’이 등장했고, ‘반빈곤연대’와 같은 연대운동이 강화됐다고 한다.
최씨는 도시빈민에 대해 “노동할 능력과 노동할 의사가 있는 ‘경제활동인구’임에도 사회구조적으로 임금노동체계 외곽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관점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필요 이상의 과잉인구를 창출하고 있다고 보는 ‘상대적 과잉인구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결국 빈민 문제가 비정규직, 최저임금 등 ‘노동권’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곧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 그렇다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600만명에 달하고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인구 비율인 절대빈곤율이 14%, 중위소득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버는 계층의 비율인 상대빈곤율도 14%(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여섯째)를 웃도는 우리 사회는 과연 ‘가난을 이겨낸’ 사회인가?
최씨는 “폭력적인 강제철거를 막아낼 근거가 되는 ‘강제철거금지법’ 도입에서부터 안전한 삶을 보장해주는 복지정책까지, 아직도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니가 김삿갓이가, 이노마
■ 문재인 “박근혜 부산방문 고맙다”
■ “김재철 사장이 명품백 선물? 시계 기념품 받은 난 기분 나빠”
■ 전여옥 “박근혜, 클럽 갈 때도 왕관 쓰고…”
■ ‘공황장애’ 지하철 기관사 투신…“어둔 터널속 외로운 운행”
■ 니가 김삿갓이가, 이노마
■ 문재인 “박근혜 부산방문 고맙다”
■ “김재철 사장이 명품백 선물? 시계 기념품 받은 난 기분 나빠”
■ 전여옥 “박근혜, 클럽 갈 때도 왕관 쓰고…”
■ ‘공황장애’ 지하철 기관사 투신…“어둔 터널속 외로운 운행”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