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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똥폭탄으로 조폭도 막아낸 강마을에 불도저가…

등록 2012-04-08 21:00

성석제
성석제
성석제 새 소설 ‘위풍당당’
시골가족과 서울조폭 대결
작가 특유의 재담 넘쳐나
결말 ‘4대강사업’ 싸움예고
“고향 낙동강 훼손에 분노”
성석제(사진)의 새 소설 <위풍당당>은 “강./ 강이다”라는 첫 두 문장으로 시작해서 “강이다./ 강”이라는 마지막 두 줄로 마무리된다. 이 수미쌍관의 구조 속에 소설 속 이야기와 인물들이 모두 들어 있는데, 그렇다는 것은 이 소설 <위풍당당>을 관통하면서 시종여일하게 흐르는 강의 너른 품이 그들 모두를 끌어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설은 순박한(?) 시골 사람들과 조폭 무리의 대결이라는 영화 같은 설정에서 출발한다. 강과 절벽 사이,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마을에 사는 여섯 ‘식구’를 서울에서 내려온 조폭들이 공격한다. 강마을 처녀 새미에게 집적대다가 크게 다친 조직원에 대한 복수가 그 명분. 싸움을 전문으로 하는 폭력배들과, 노인과 여자들이 포함된 마을 주민들 사이의 대결이 뜻밖에도 마을 사람들의 승리로 끝난다는 결말 역시 다분히 ‘영화적’이다.

싸움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인은 자연이다. 가령 소설 도입부에서 새미를 덮치려던 건달 세동이는 생딸기덤불에 눈과 얼굴을 찔리는 바람에 새미와 준호 남매의 역습을 당한다. 그 세동을 구하러 가는 조폭 두목 정묵의 복장은 그들이 얼마나 자연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인지를 웅변한다. 아르마니 넥타이, 페라가모 구두, 베르사체 선글라스, 카르티에 시계…. 그러나 페라가모 구두는 세동이 싸 놓았던 똥을 밟는 바람에 더러워졌고, 130수 최고 원단으로 만든 양복은 나뭇가지와 바위에 긁혀 구겨지고 찢겼다. 선발대로 마을에 들어갔던 조폭 네 명은 화장실 대용으로 파 놓은 커다란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이어서 들이닥친 본진은 주민들의 고춧가루 폭탄과 똥폭탄 공격에 맥을 못 춘다. 게다가 여산의 충동질을 받은 말벌들의 공격까지 이어지자 조폭들은 체면 불고하고 항복을 선언한다…. 작가 특유의 재담은 독서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회칼을 든 정묵과 맨손으로 맞선 여산 사이의 마지막 일대일 대결까지 여산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소설은 그야말로 영화다운 해피엔딩을 택하는 듯하다. 여산의 공격에 얼굴을 처박고 고꾸라진 정묵이 “생전 처음 맛보는 시골의 흙 맛. 치욕의 맛”을 느끼는 장면으로 소설이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작가는 소설 말미에 정묵 일당보다 더 크고 위협적인 적을 등장시킨다.

성석제의 새 소설 <위풍당당>
성석제의 새 소설 <위풍당당>
“불도저와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와 덤프트럭 수백 대가 강변의 흙길을 따라 열을 지어 들어오고 있다.(…) 기계의 팔은 나무와 바위를 내리치며 가지를 찢고 균열을 낸다. 파괴와 죽음을 상징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고 공기를 휘젓고 아비규환의 지옥을 예고한다.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생명을 닮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멸절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죽음의 군대다.”

마을 주민들과 조폭들 사이의 대결을 한갓 어린애 장난 정도로 치부하게 만드는 이 새롭고 막강한 적의 이름이 ‘사대강 사업’임은 물론이다. 불도저와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등장하는 것은 여산과 정묵의 싸움이 마감될 무렵인데, 정묵을 물리친 여산이 이 새로운 적들을 상대로 또 다른 싸움을 예고하는 것이 이 소설의 진짜 결말이다. “저것들하고 까대기 한판. 저 숭악하고 못생기고 개돼지만도 못한 불한당 또라이 쫄따구 빙신 쪼다 늑대 호랑말코들하고.”

평소 어눌하고 과묵했던 여산의 흥분된 반응은 사대강 사업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대변한다. 작가는 작년 초 고향 상주의 사대강 사업 현장을 가서 보고 이 마지막 장면을 소설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 할머니의 손을 잡고 소풍을 갔던 낙동강 경천대가 형편없이 망가졌더라구요.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 그렇게 훼손된 걸 보니,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와서 내 살던 공간을 다 파괴해 버린 듯 참을 수 없는 무기력감과 분노가 몰려들더군요.”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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