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룩 ‘인물과 사상’33호로 종간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출범했던 ‘저널룩’ <인물과사상>(개마고원 펴냄)이 33호로 종간했다. 1997년 1월 제1권을 선보인 이래 8년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초창기 1만부를 넘기던 발행부수는 최근 들어 2천부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26호부터 편집위원체제를 갖춰 강준만 전북대 교수 외에 김진석 인하대 교수와 언론인 고종석씨가 들어와 지면을 꾸렸지만, 독자의 이탈을 막지 못했다.
오래 순항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저널룩 <인물과사상>은 몇 가지 점에서 예외적인 성과를 이루어냈다. 먼저, ‘1인 저널리즘’이라는 독특한 출판 실험을 꼽을 수 있다. 한 사람이 출판을 통해 저널리즘의 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도전적인 실험이었던 것이다. 그런 정신 아래 <인물과사상>은 통상의 계간지처럼 분기에 한 번씩 빠짐없이 나왔으면서도, ‘저널’과 ‘북’을 결합한 신조어 ‘저널룩’이란 이름을 고집했다. 언론행위로서의 출판을 표방한 것은 이 잡지가 첫선을 보일 당시의 한국적 언론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언로를 장악한 제도권 언론 매체들이 기득권 집단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상황에서 출판을 통해서라도 이들의 목소리에 맞서는 대항 목소리를 낼 필요가 절실했던 것이다.
둘째, ‘성역 깨기’라는 도발적 문제의식의 결실이다. <인물과사상>은 모두가 느끼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민감한 주제를 과감히 의제로 채택했다. <조선일보>·지역주의·학벌주의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고듦으로써 기존의 언론이 금기시했던 것들을 공적인 논쟁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셋째, ‘실명 비판’이라는 글쓰기 방식의 혁신이다. 매우 현실적인 주제로 비판적 견해를 밝힐 때조차도 실명을 뺀 채 추상적인 비판에 머물렀던 지식인들의 글쓰기 방식을 거부하고, 실명을 거론하며 옳고 그름을 따진 것은 <인물과사상>을 특징지은 글쓰기 방식이었다.
종간호에서 강준만 교수는 인터넷이 정치적·시사적 이슈를 다루던 책의 기능을 완전히 흡수해 버린 상태에서 저널룩 <인물과사상>의 시효가 만료됐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종간호는 <인물과사상>의 시효를 앞당긴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를 주제로 잡아,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점을 짚는다. “초기의 민중적 장점에만 주목하기엔 인터넷은 너무 비대해졌고 금력과 권력의 눈독이 집중하고 있다. ‘저항’의 메시지는 제스처로 변해갈 정도로 인터넷은 이제 더는 아웃사이더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은 종간했지만, 강 교수가 주도하는 또다른 잡지 월간 <인물과사상>(인물과사상사 펴냄)은 계속 발행된다. 인물과사상사는 <인물과사상> 외에 1월부터 시사인물과 시사상식을 집중 소개하는 웹진(new.inmul.co.kr)를 만들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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