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1921~68)이 쓴 시에 등장하는 어휘들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뜻풀이와 용례를 붙인 사전이 나왔다. 최동호(사진) 교수가 이끄는 고려대 현대시연구회가 10년의 작업 끝에 내놓은 <김수영 사전>(서정시학)은 <김수영 전집 1-시>(2003·민음사)에 실린 작품 176편에 나오는 시어 5220개를 표제어로 삼아 김수영의 시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문학 연구는 대상을 엄밀하게 정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좀더 실증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최 교수는 ‘4·19혁명 52돌’을 하루 앞둔 18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9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사전은 현대시연구회 회원 82명이 2003년부터 10년 동안 36차례 회의를 하고 10여차례의 교정 작업을 거친 끝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사전을 보면, 김수영은 ‘않다, 없다, 안, 없어, 아니, 말다, 못하다, 아니, 안 하다’ 같은 부정어를 98편의 시에서 무려 250번 사용했으며 이는 김수영이 지닌 부정의 정신을 말해 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김수영은 ‘사랑’이라는 시어를 16편의 시에서 48번 사용했고, ‘좋다’를 32편에서 41번, ‘웃다’를 17편에서 33번 쓰는 등 사랑과 긍정의 시인이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이런 통계를 보면 김수영의 부정이 긍정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김 시인은 ‘보다’와 ‘보이다’를 각각 72편에 123번과 22편에 34번, ‘모르다’를 43편에서 70번, ‘생각하다’를 41편에서 69번, ‘알다’를 34편에서 55번 사용하는 등 능동적·적극적인 관찰과 사유, 그리고 인식을 향한 김수영 특유의 노력 역시 사전을 통해 새삼 확인된다.
“김수영은 불도저같이 60년대를 밀고 나간 시인입니다. 신경림과 김지하 같은 민중시도 김수영의 선행 작업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생각하기 어렵죠. 이번 시어 사전 편찬을 계기로 김수영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가 한층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벚꽃길에 나타난 문성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 정치인들 ‘나꼼수’ 출연 한번 하려고 기를 쓰더니…
■ 지붕 없는 에쿠스, 타봤어?
■ ‘말 잘 안 듣는다’ 여자친구 살해·암매장한 무서운 10대
■ [내부자들] 전혀 다른 게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