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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쫄깃한 입담으로 풀어낸 서양미술사

등록 2005-01-21 16:31

 시선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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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모험 \
장루이 페리에(프랑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명예교수)가 쓴 <시선의 모험>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회화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개설서다. 그런데 통상의 미술사 개설서와 다른 점이 있다. 지은이는 자기 마음 속에 미술관을 세운 뒤 자신의 눈길을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명화 30점을 뽑아 연대순으로 전시해 놓고는 스스로 해설자가 돼 그림의 앞면과 뒷면에 담긴 이야기를 쫄깃한 입담으로 풀어낸다.

이 전시의 기본 구상은 ‘시선’이다. 지은이는 600년에 이르는 서양 근대 회화사를 ‘보이는 세계의 발명’, ‘재현의 수단 회화’, ‘시선의 해방’이라는 세 시기로 구획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시선이란 화가의 시선이다. 본다는 것은 이미 어떤 관점을 전제로 한다. 중세 이전에도 화가는 사물을 보았고 그렸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와 그 ‘보는 눈’에 결정적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시선의 변혁을 요약하는 사건이 ‘원근법의 발견’이다. 화가들은 세상을 굽어보는 신의 시선에서 벗어나 기하학자의 눈으로 사물을 보았다. 원근법의 도움으로 화폭의 2차원 평면은 3차원의 건축적 공간을 재현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 그 재현은 사물들의 표면의 재현에 머물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모나리자>(1503~1506)에 와서 비로소 화가의 시선은 인물의 내면 속으로 들어갔다. 다 빈치는 밝음과 어둠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얼굴의 표면으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는 해부학에 기초해 인물의 형상을 극한의 사실성으로 드러냈다. ‘모나리자’의 표정을 이루는 입과 뺨은,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조르조 바사리의 표현을 빌리면, “물감이 아닌 진짜 살로 만들어졌다.”

원근법은 화폭을 연극 무대로 만들었고, 인물들은 그 연극의 주인공들이 됐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1533)은 그 연극 무대를 정교하게 드러낸 전형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그 무대 앞에 알 수 없는 어떤 물체가 어른거린다. 외계에서 침입한 듯 난데없는 이 물체는 주인공들의 평온하고도 안정감 넘치는 세계를 위협한다. 감상자는 그림의 오른쪽 측면에서 돌아볼 때에야 이 낯선 이물질이 커다란 해골의 왜상임을 알아차린다. 이 작품은 이중의 의미를 품고 있다. 넉넉하고도 차분한 삶의 무대는 단지 거죽, 가면일 뿐이며, 언제라도 죽음은 그것을 앗아갈 수 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이 그림의 메시지인 셈인데, 그걸 바로 알아차릴 수 없는 왜상으로 표현했으니, 죽음을 모른체하려는 근대인의 태도가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회화의 ‘재현 문법’은 이후로도 300년을 지속했다. 재현 방식에 혁명적 시도를 했던 인상주의도 그 문법을 버리지 않았다. 점묘화가 조르주 쇠라의 신인상주의에 이르러 이 문법조차 깨져버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 저마다 자기만의 문법을 제출한다. 시선이 해방된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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