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43·왼쪽)과 정이현(40)
소설 ‘사랑의 기초’
공동작업 2년 만에 결실 맺어
서울 이십대 후반 청춘 연애
런던 삼십대 후반 부부 소재
달콤씁쓸 ‘사랑 이야기’ 그려
공동작업 2년 만에 결실 맺어
서울 이십대 후반 청춘 연애
런던 삼십대 후반 부부 소재
달콤씁쓸 ‘사랑 이야기’ 그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작가 알랭 드 보통(43·왼쪽 사진)과 한국 작가 정이현(40·오른쪽)이 사랑과 결혼을 주제로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 소설’ <사랑의 기초>가 책으로 나왔다.
출판사 톨에서 출간한 보통의 <사랑의 기초-한 남자>(우달임 옮김)와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연인들>은 한국과 유럽 작가의 공동 작업이라는 점에서 출간 전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다. 보통이나 정이현이나 외국 작가와 이런 작업을 하기는 처음이다. 두 사람은 2010년 4월 출판사 쪽 제안에 흔쾌히 응한 뒤 공동 작업의 주제와 형식을 놓고 논의한 결과 ‘사랑, 결혼, 가족’을 주제로 각자 경장편을 쓰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소설 집필에 앞서 시놉시스를 교환해서 검토했고, 영문과 국문으로 번역한 상대방의 초고를 읽은 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만나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연인들>은 서울에 사는 이십대 후반 남녀 준호와 민아의 연애사를 다루었으며, <한 남자>는 런던 교외에 사는 삼십대 후반 부부 벤과 엘로이즈 부부의 결혼과 가족 생활을 그렸다. 사랑과 연애는 두 작가에게 낯선 주제가 아니다. 보통은 한국에서도 널리 읽힌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사랑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젊은 남자의 심리를 냉정하게 관찰한 바 있으며, 정이현은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와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낭만적 사랑을 탈신화화하는 한편 당대의 연애와 결혼 풍속도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바 있다.
앞선 작품들에서 어느 정도 시간적 거리를 두고 쓰인 신작들에서 두 작가는 낭만적 사랑과 그에 뒤따른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고정관념에 약속이나 한 듯 딴죽을 건다. 정이현의 소설에서 연애는 수많은 우연의 중첩이 낳은 일시적인 기적이지만, 결국은 다가왔다가 멀어져 가는 혜성처럼 엇갈리는 행보로 마감된다. 보통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결혼은 연애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 연애를 배반하고 불가능하게 만드는 함정임이 까발려진다.
“이곳은 보기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세계였다. 치정 때문에 죽고 죽이는 고대 희랍식 드라마는 자주 일어나지 않으며, 드라마 퀸이 되기를 열망한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그런 역할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연인들>)
“현대의 결혼은 섹스, 사랑, 가족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대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각각 다른 것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한 남자>)
그렇다고 해서 두 작가가 환멸과 절망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정이현의 주인공들은 뜨겁게 불타올랐던 애정이 차갑게 식은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대신 그것이 사랑과 연애의 일반적인 속성임을 영리하게 수긍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눈물은 오래지 않아 마를 것이고 그들은 머지않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보통의 주인공 벤은 아내를 향한 감정의 쇠락과 충족되지 않는 성적 욕망이라는 ‘시험’에 맞서 평범 속의 비범이라는 가치를 지키고자 고투한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 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지난해 9월 나눈 대담에서 정이현은 “우리는 누군가를 전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는 존재들임에도 내가 찾아 헤매던 것들을 바로 이 사람이 갖고 있다고 확신하는 ‘자발적 오독’의 상태가 낭만적 사랑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연인들>에서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보통 역시 “결혼 제도의 가장 큰 모순이 독점적으로 허용된 섹스에서 비롯한다는 얘기를 <한 남자>에서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랑의 기초>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간되었다. 출판사 톨의 이수은 대표는 “두 소설의 영어판을 비롯한 해외 출간 논의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프로젝트 소설’ <사랑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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