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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어머니 이야기 사실대로 쓰는 게 되레 어렵더라”

등록 2012-05-20 20:42

김주영의 소설 <잘 가요 엄마>(문학동네)
김주영의 소설 <잘 가요 엄마>(문학동네)
소설 ‘잘 가요 엄마’ 낸 김주영
“남자를 두 번이나 갈아치운”
어머니에 대한 뒤늦은 고백
“자식들 위해 생을 탕진한 분”
일흔셋에 쓴 ‘참회의 사모곡’
“어머니는 두 남자를 만나 각각 아들 하나씩을 낳았다. 말이 결혼이었지 두 번 모두 혼례를 치렀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김주영(73·사진)의 소설 <잘 가요 엄마>(문학동네)는 과감한 고백이다.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별다른 소설적 가공 없이 옮겼다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치부로 여겨질 법한 어머니의 사연을 가차없이 까발린다. 먹고살기 위해 “남자를 두 번이나 갈아치”운 것이 어머니의 부끄러움이라면, 친부에게 버림받고 새아버지 및 이부(異父) 동생과 어머니를 나누어야 했던 유년기는 작가 자신의 감추고 싶은 비밀이라 하겠다.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소설은 새벽 세 시에 걸려 온, 어머니의 부고를 전하는 동생의 전화로 문을 연다. 평생 고향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던 어머니를 역시 고향에서 교사로 늙어 온 아우가 모셔 왔던 터.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내려오라는 아우의 말은 실인즉 주인공 ‘나’가 한사코 외면했던 어머니의 진실과 대면하라는 명령과 다름없다. 고향에 내려간 주인공이 어머니에 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고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데 대해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구두쇠 스크루지의 개심 과정을 연상케도 한다.

“그동안 어머니의 이야기를 비슷하게 그린 소설은 많이 쓴 편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머니’에 대해 지니고 있는 모종의 상식을 거스르기 어려워 어머니의 진짜 이야기를 쓰는 대신 변죽만 울려댄 셈이었어요. 이제 제 나이도 어언 일흔이 넘은 만큼 더 숨기고 자시고 할 것 없이 툭 터놓고 가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동안 어머니에 대해 때로는 감추고 때로는 각색하고 때로는 위장이나 변명도 했던 데 대한 고백과 참회의 의미도 이 소설에는 담겨 있습니다.”

소설에도 거의 사실대로 그려져 있지만, 작가의 어머니는 지난 2007년 정부에서 주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런 말씀과 함께 끝내 시상식에 올라오지 않았다. “골목마다 종갓집이 버티고 있는 이런 괴팍스런 동네에서 사내를 두 번씩이나 갈아치웠다고 입들을 흔들비쭉거리고 눈총받고 살아왔는데, 장한 에미상을 받았다면 그 사람들 배꼽을 잡고 웃을라.”

김주영(73)
김주영(73)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최대한 감추는 대신 어머니가 골몰한 것은 몸을 혹사시키다시피 하면서 두 자식을 건사하는 일이었다. 유부남이었던 첫 번째 남자는 물론이고, 돈푼깨나 있는 줄 알고 결혼했던 두 번째 남자 역시 갈데없는 한량이어서 가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 “비천한 신분과 타고난 가난이라는 족쇄에 묶인 채 당신보다는 자식들을 위해 생애를 탕진한 분”이라고 작가는 그 어머니를 규정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의 사실 그대로 쓴 소설이라서 오히려 쓰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완전한 픽션이라면 복선을 깐다든가 갈등 구조를 확대하는 등으로 소설적 구성력을 발휘하기 쉽겠지만, 사실을 소설로 쓰다 보니까 그게 어렵더라구요.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사실을 선택한 게 이 소설입니다.”

<잘 가요 엄마>는 작가가 처음으로 인터넷에 연재한 작품이다. 그는 “오래 망설이고 회피했던 이야기라서 무언가 등을 떠미는 장치가 있어야 소설을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연재를 택했다”며 “소설을 마치고 나니 냉수 한 그릇을 벌컥벌컥 마신 듯 가볍고 후련하다”고 말했다.

구한말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그린 대하소설 <객주>를 모두 아홉 권으로 완간한 바 있는 작가는 새로 확인한 경북 울진의 보부상길을 무대로 삼은 <객주>의 마지막 10권을 올해 안에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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