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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00년전 아낙들의 ‘해방구’였던 화전놀이

등록 2012-06-01 21:10

<덴동어미전> 박정애 지음/한겨레출판·1만1000원

박정애(42·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 교수)의 <덴동어미전>은 조선시대 내방가사 ‘덴동어미화전가’를 바탕 삼아 쓴 소설이다. 불에 데었다고 해서 ‘덴동이’라 불리는 아들을 데리고 홀로 사는 엿장수 덴동어미를 중심으로 아낙네들의 꽃놀이(화전놀이) 풍경을 그린 노래가 ‘덴동어미화전가’다.

박정애의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년 전 경상도 순흥 지방 여인들의 화전놀이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비봉산에 참꽃이 필 무렵 빨래터 아낙네들 사이에서 화전놀이 얘기가 공론화하고, 동네의 여자 어른 격인 안동댁이 통문을 돌리자 화전놀이가 시작된다. 각자 형편껏 추렴을 해서는 행차에 나선 여인네들이 산자락 너른 터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해 먹고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잘 놀다 오는 광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남존여비의 억압적 질서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일 년 중 단 하루 한데 모여 불만과 욕망을 한껏 토로하며 그간의 설움을 털어 버리는 자리가 바로 화전놀이다.

주인공 덴동어미는 특유의 활달한 성정과 시원스런 탁성으로 자신의 굴곡진 삶을 노래로 부른다. 곱게 자란 양가의 규수로서 부모가 정해 준 혼처로 시집을 갔지만 남편은 단오절 그네에서 떨어져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고, 두 번째 시집을 간 집은 나랏돈에 손을 댔다가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남편은 결국 괴질에 희생된다. 발길 닿는 대로 떠돌다 도붓장사 황도령을 만나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세 번째 남편은 홍수에 떠내려가고, 네 번째 남편인 엿장수 조첨지 사이에서 늦둥이로 귀한 아들까지 보지만 엿을 고는 과정에서 큰불이 나는 바람에 남편은 죽고 아들은 화상을 입는다…. 덴동어미의 노래는 덴동어미 자신의 한과 슬픔을 정화하는 효과도 지니지만 다른 여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객관화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출구를 모색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 노래는 그래서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호강살이 제 팔자요 고생살이 제 팔자라/ 남의 고생 꿔다 하나 한탄한들 무엇할꼬/ 내 팔자가 사는 대로 내 고생이 닫는 대로/ 좋은 일도 그뿐이요 그른 일도 그뿐이라/ 춘삼월 호시절에 화전 놀음 왔거들랑/ 꽃빛일랑 곱게 보고 새소리는 좋게 듣고/ 밝은 달은 예사 보며 맑은 바람 시원하다/ 좋은 동무 좋은 놀음에 서로 웃고 놀다가소”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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