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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마르크스·엥겔스 ‘맨얼굴’로 온다

등록 2012-06-19 21:22

‘전집’ 번역편집위원장 강신준 교수
‘전집’ 번역편집위원장 강신준 교수
‘전집’ 번역편집위원장 강신준 교수
육필 기초한 첫 ‘정본’ 번역키로
“이제까지 우리가 접한 저작들은
구소련·동독 잣대 따른 편집본”
114권 가운데 1차분 8권 작업중
위대한 사상은 대체로 문헌으로 후대에 전해진다. 사상에 대한 연구가 문헌에 대한 연구와 따로 떼어놓기 어려운 이유다. 근대 세계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며 국내에서도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됐던 카를 마르크스와 그의 지적 동지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길은 최근 독일 아카데미출판사와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모든 지적 유산을 집대성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의 한국어판을 출간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그동안 국내에선 필요에 따라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들이 단행본이나 선집 형태로 소개됐을 뿐, 그들의 사상을 집대성한 ‘전집’은 출간된 적이 없었다. 1997년 박종철출판사에서 펴낸 전체 6권짜리 저작집 역시 전집이 아닌 ‘선집’이었다.

무엇보다 이번에 저작권 계약을 맺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육필 원고들을 기초로 삼아 그들의 모든 지적 유산을 집대성한 고증판 전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그들이 직접 쓴 원고를 그대로 출판하는, 그야말로 ‘정본’(正本)이다. 전집 작업은 1920년대 옛소련에서 추진했다가 중단된 바 있으며, 1990년 설립된 ‘국제마르크스엥겔스재단’(IMES)이 이어받아 현재까지 계속 진행해오고 있다. 2020년 완간을 목표로 전체 114권 가운데 현재 59권까지 출간한 상태다.

그렇다면 정본을 읽는 것은 무엇이 다르며, 왜 중요한가? 전집 번역에 나서는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자신들의 관점에서 편집하지 않은 상태의,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의 맨 얼굴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강 교수는 옛소련 등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는 궁극적으로 ‘근대화’를 목표로 한 ‘국가자본주의’의 길을 걸었는데, 이것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원초적인 사상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접해온 모든 마르크스·엥겔스 저작들은 제2차세계대전 뒤 소련·동독 정부가 편집해 펴냈던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EW) 판본에 기초를 두고 있다. 때문에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자신들의 잣대에 맞춰 편집했던 판본과는 다른, 마르크스·엥겔스의 생각을 그대로 담은 판본을 통해서 더욱 풍부한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을 접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국제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은 전집 작업에 대해 ‘탈정치·탈이데올로기 성격을 지닌 학술적 작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전집 속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펼친, 하나의 잣대로만 정리되지 않을 다양한 생각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이론과 해석들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할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자본> 독일어판을 우리말로 완역한 바 있는 강 교수는 일찍부터 전집 발간에 관심을 두고 국외 학자들과 교류를 해왔으며, 이번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의 한국어판 발간을 위한 번역편집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다. 김호균 명지대 교수(경제학), 김정로 고려대 교수(사회학), 김경수 고려대 교수(철학), 신명훈 한양대 교수(역사학) 등이 번역편집위원회에 참여하며, 마르크스-엥겔스 문헌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로 꼽히는 정문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고문을 맡았다.

이번 저작권 계약은 전집 전체가 아닌 1차분 8권에 대해서만 먼저 체결됐다. <헤겔 법철학 비판> <경제학 철학 초고> <공산주의자 선언>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경제학 비판> <잉여가치학설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각 저작물마다 육필원고를 바탕으로 만든 원본과 독일어로 된 주해서(apparat)가 딸려 있으며, 한국어판에는 여기에 한국어 주해서가 추가로 붙을 계획이다.

강 교수는 최근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동아대학교에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를 설립했다. 공식 이름에 ‘마르크스’를 넣은 국내 최초의 연구소라고 한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어판 전집 발간을 위해 탄탄한 진지를 구축해둔 셈이다. 다만 재정 마련이 최대의 고민거리다. 강 교수는 “국외 정본을 국내에 들여오는 의미 있는 사업인데, 번역에 대해서는 별다른 재정 지원이 없어서 걱정”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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