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철원> 이현 지음/창비·1만2000원
<1945, 철원>
‘도둑처럼 찾아왔다던 해방의 그날,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1945, 철원>의 시작은 이 문장에서 짐작해 봄직하다. <우리들의 스캔들> <오, 나의 남자들!> 등을 쓴 이현 작가는 어느 겨울 강원도 철원을 찾는다.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으로 편입된 철원은 1945년 해방 직후엔 북한이었던 곳이다. 민통선 입구에서 조선로동당 철원군 당사 건물을 서성이던 작가는 민통선 너머에서 농사짓는 한 노인을 만난다. 눈으로 본 역사의 현장에 이야기가 덧씌워진다.
철원에서 나고 자라 평생 한자리에 살았을 뿐인데 노인의 삶은 굴곡진 역사 그 자체가 됐다. 일제 식민통치 아래 태어나 조선인민공화국 시대를 거쳐 전쟁 와중에는 미군정 통치를 받았고, 이제 대한민국 울타리에서 사니 네 나라를 겪었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노인을 통해 분단 장벽 아래 묻힌 이야기를 듣는다. 일제 통치를 벗어나 새 희망에 부풀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실타래는 그렇게 풀린다.
<1945, 철원>은 해방을 소재로 역사의 격랑에 휩쓸렸던 청소년들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친일 세력가 집에서 종살이하던 경애, 신분주의를 버린 공산주의자 도련님 기수, 콧대 높은 양반집 딸 은혜, 경성 출신 모던보이 제영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계집종과 양반 딸이 허물없는 친구가 되며 평등한 세상이 올 것 같던 그때, 철원은 다시 공포에 휩싸인다. ‘철원애국청년단’이 잇따라 테러를 일으키고 사람들은 동요한다. 경애, 기수, 제영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서울로 월남을 결심하고, 은혜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철원애국청년단을 은밀히 돕는다. 철원 일대가 술렁이는 가운데 각자의 꿈을 지키기 위한 철원 아이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작가는 해방이란 역사적 공간에서 같은 민족이라도 나이, 신념, 계급에 따라 해방의 의미가 달랐으리라는 점에 주목한다. 공산당 정권 아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 오랜 동무이지만 서로 반대되는 곳을 바라보는 기수와 은혜, 자매지만 서로 이상이 다른 경애와 미애 등 갈등에 휩싸인 이들의 슬픔이 절절하다. 하지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은 희망차다. 경애의 우상이었던 홍정두의 말에 작품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 “우리는 늘 나약하고 어리석고, 그래서 흔들리고 방황하지. 하지만 뭘 꿈꾸는지 잊지 않는다면, 언제고 제 길로 돌아올 수 있어.”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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