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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람답게 살고 싶어 고릴라 탈 쓴 ‘아이러니’

등록 2012-07-15 19:54

강태식(40) 소설가
강태식(40) 소설가
동물원 취직한 동료 넷 화자로
물고 뜯고 사는 서바이벌 세상
인간사회의 비인간화 꼬집어
씁쓸하지만 웃음과 해학 가득
소설 <굿바이 동물원>
소설 <굿바이 동물원>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굿바이 동물원’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강태식(40·사진)의 소설 <굿바이 동물원>이 책으로 나왔다. 한겨레출판 펴냄.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 구실을 그만두고 동물 노릇을 해야 하는 인물을 등장시킨 블랙코미디다.

주인공 김영수는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떨려난 뒤 마늘 까기와 곰인형 눈알 붙이기, 종이학 접기 등으로 소일하다가 동물원에 취직한다. 시립이라서 공무원과 마찬가지 신분이라는 말에 악착같은 노력으로 체력 테스트도 통과했다. 그러나 동물원에 가 보니 그가 해야 할 일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고릴라 탈을 쓰고 마운틴고릴라 행세를 해야 했던 것….

<굿바이 동물원>은 화자이자 주인공인 김영수와 그의 동료 고릴라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적 가치와 실제 인간 삶 사이의 괴리, 그리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 구실을 포기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아프게 부각시킨다.

인간 김영수가 고릴라 탈을 쓰고 동물 행세를 하게 된 상황은 일종의 ‘추락’이라 할 법하다. 타의에 의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고, 마늘 까기와 인형 눈알 붙이기, 종이학 접기 같은 허드렛일을 거친 끝에 낙착된 일거리가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의 위계가 엄연한 마당에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동물 탈을 쓰고서야 비로소 존재 이유를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당사자로서도 결코 기꺼울 리는 없을 테다.

그러나 주인공 김영수를 비롯해 고릴라 행세를 하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사정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령 “사람 구실 하겠다고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한 나였어.(…)사람 구실을 포기하는 대신 사람답게 살고 싶었으니까”라는, 동물원의 선배 고릴라 조풍년씨의 말을 들어 보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의 과장으로 일하던 그는 회사가 구조조정 바람에 휩싸이자 극단적인 양자택일을 요구받는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아니면 다른 두 직원의 사표를 받아 내라는 것.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명을 죽여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갖은 협잡과 강압, 회유를 동원해 목표를 달성한 그는 결국 오래된 물을 처리한다고 해서 ‘오물처리반’으로 불리는, 비밀 물갈이 전담반 요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름 능력도 인정받고 가외의 목돈도 챙기지만, 결국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자신도 토사구팽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그는 확고한 교훈을 얻는다. “이 나라에서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 구실을 포기해야” 하며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라는 것. 동물원의 재발견이다.

수십 년 전 남파간첩으로 내려왔지만 아무런 임무도 부여받지 못한 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던 중 신고 포상금을 노린 연락책에게 쫓기다가 동물원으로 숨어든 최고참 만딩고, 공무원 시험에 몇 년째 떨어지고 있는 미혼 여성 앤 등 나머지 고릴라들의 사연 역시 인간 사회의 비인간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부각시킨다. 만딩고가 휘두르는 회칼을 맨몸으로 받아 내면서도 물러서지 않던 연락책이 하던 말-“나는 돈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소”-은 이들을 동물원으로 내몬 비인간화의 주범을 정확히 지목한다.

동물원에서 각종 동물 행세를 하던 인간들이 콩고나 시베리아, 북아메리카 등 해당 동물의 원래 서식지로 들어가 아예 동물로 살아가는 삶을 택한다는 소설 뒷부분의 이야기는 만화적 과장 속에 인간 사회에 대한 통렬한 힐난을 담고 있다. 그 대목을 포함해, 쓰라리고 슬픈 이야기를 천연덕스러운 웃음과 해학에 버무려 전하는 것은 이 소설의 빛나는 미덕이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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