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신경림, 양성우, 도종환. 오른쪽 위부터 김준태, 강은교, 손택수 시인. <한겨레> 자료사진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시인들의 대표작 128편 묶어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내놔 1984년 신인 시인 14인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로 첫발을 내디딘 실천문학사의 ‘실천시선’이 통권 200호를 맞아 기념 시선집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를 내놓았다. 지난 4월에 나온 고형렬 시집 <유리체를 통과하다>까지 모두 199권의 시집에서 개별 시인들의 대표작 한 편씩을 골라 뽑아 모두 128편이 묶였다. 최두석·박수연 엮음.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하느님도 새 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부분)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 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양성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앞부분) 인용한 작품들에서 보듯 실천시선은 사회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삼는다. 무녀리 격인 합동 작품집의 제목 ‘시여 무기여’는 실천시선의 지향과 개성을 적절히 요약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실천시선이 정치를 위해 문학을 희생했다는 뜻은 아니다. 투쟁과 서정의 적절한 결합이야말로 실천시선의 존재이유라 할 수 있다.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 강은교 시집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도종환 시집 <접시꽃 당신>, 허수경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등은 투쟁과 서정의 결합이 성공을 거두고 독자 대중의 사랑까지 확보한 사례들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뒷부분)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첫 연과 마지막 연) 불의한 현실에 눈감지 않고
‘시가 곧 투쟁’ 사회참여 적극
서정성도 함께 유지 사랑받아 28년의 연혁을 쌓아 오는 동안 유명을 달리한 시인들도 여럿 생겼다. 목사 시인 문익환을 비롯해 박재삼 박정만 김남주 고정희 박영근 윤중호 임길택 조영관 김충규 등이 이승의 호적을 파서 저쪽 세상으로 옮겨 갔다. 그 가운데 한 사람, 김남주의 대표작 <학살 1>과 지금 실천문학사 대표로 재직하고 있는 손택수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를 나란히 읽어 보면 실천시선의 폭과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학살 1> 부분)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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