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에 떠났던 고향 집 자리에 아담한 집필실을 지어 돌아온 유용주가 환한 웃음을 웃고 있다. <아름다운 얼굴들>은 그가 사랑한 동료 문인들의 이야기다.
장수/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유용주 발문집 ‘아름다운 얼굴들’
박경리·이문구·박범신 등 13명
특유의 감칠맛 나는 글로 소개
“한창훈 첫인상, 수군통제사감”
“송기원 얼굴은 봄꽃처럼 환해”
박경리·이문구·박범신 등 13명
특유의 감칠맛 나는 글로 소개
“한창훈 첫인상, 수군통제사감”
“송기원 얼굴은 봄꽃처럼 환해”
“홍성 장에서 훔친 황소 들쳐메고 달려왔다가 막 반값에 팔아치운 듯 뜨거운 기운을 내뿜으며 복도 저만치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대천왕 같은 물건이 있었다. 오오, 크고 넓기도 하지.”
“언어의 이 반달곰은, 그 산불 같은 정신으로, 운문/산문 가리지 않고, 막우 쳐눕히고, 막우 처먹어댄다.”
앞의 인용문은 유용주 시집 <은근살짝>(2006)에 붙인 동료 작가 한창훈의 발문 일부이고, 뒤엣것은 역시 유용주의 소설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보고>(2009)에 실린 고향(장수) 선배 작가 박상륭의 발문 한 대목이다. 발문이란 책 끄트머리에 그 책의 내용과 지은이에 관해 친절하게 풀어 쓴 글을 가리킨다. 지은이와 막역한 사이인 동료 문인이 필자로 나서서 지은이의 인간적 면모와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문인에 대한 이해와 애정, 그리고 무엇보다 감칠맛나는 글솜씨가 필수적인데, 작고한 이문구가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당대의 문인 중에서는 시인 김정환과 이문재, 그리고 유용주가 탁발한 발문 필자로 꼽힌다.
<아름다운 얼굴들>(한겨레출판)은 동료 문인 열세 사람에 대해 쓴 유용주의 발문 모음이다. 작고한 박경리와 이문구를 비롯해 박범신 송기원 정낙추 이면우 박남준 김해자 이나미 안상학 이원규 한창훈 이정록 등이 초대되었다.
친한 동료 문인이 발문 필자로 선택되다 보니 두 사람이 발문을 주고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유용주와 한창훈이 그런 경우다. 유용주는 한창훈의 첫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1996)에 ‘한 도보 고행승에 대한 중간 보고’라는 근사한 제목의 발문을 붙였는데, 한창훈의 첫인상을 기술한 대목은 이러하다.
“멧새들이 보면 집 짓기 딱 알맞은 봉두난발에다 옛날 추자나무 잎 다 갉아먹던 추자벌레처럼 금방이라도 살아 꿈틀거릴 것 같은 눈썹에다 꺽정(巨正)이 살아왔나 구레나룻과 턱수염 좀 보소. 나도 어디 가서 체격 하나라면 밑지고 들어간 적이 별로 없는데 왔다, 참말로! 세월을 조금만 물리자면 조선 시대 삼도 수군통제사감이었다.”
그러고 보면 앞서 인용한 한창훈의 발문은 유용주의 이 글에 대한 응수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1993년 처음 만난 이래 한동안은 같은 아파트의 아래위층에 살면서 “신화 같은 술 역사”를 썼던 두 사람이 1994년 가을에는 원주 박경리 선생 댁에서 열린 <토지> 완간잔치를 위해 간이 식당과 화장실을 짓는 일에 동원되었다. 둘 다 씨름 선수 같은 덩치에 외모도 그럴싸해서(?) 며칠 동안 박경리 선생은 이 사나이들을 그야말로 막노동꾼으로 알았단다. 그러다가 유용주가 자신의 시집에 서명을 해서 드린 뒤에야 비로소 그들이 문인인 것을 알게 된 박 선생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그렇게 일주일 동안 허드렛일을 하고 돌아가는 두 사내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면서 박 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일하는 사람 손은 썩지 않아요. 제 손을 보세요. 글이 잘 안 될 때마다 얼마나 일을 했는지, 손톱이 다 닳았잖아요.”
축하 잔치를 당겨서 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던 1988년 신춘문예에서 자신을 떨어뜨리고 당선한 ‘악연’에서 비롯된 시인 안상학과의 인연, 무슨 일이든 솜씨 좋게 잘했으나 행방불명되고 만 작은형을 떠오르게 하는 시인 박남준, 그리고 ‘서해안 주당 협회’의 ‘교주’로 모시는 시인 이정록 등 절친들에 관한 글은 그이들의 술자리에 동석해 있는 것 같은 흥취를 자아낸다. 다음은 선배 문인 송기원의 면모를 그린 유용주 득의의 문장이다.
“선생의 얼굴은 편했다. 봄꽃처럼 환했다. 걸림이 없는 물 같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했다.(…)다복다복했다. 으름으름했다. 소곤소곤했다. 자박자박했다. 풍찬노숙의 세월은 오간 데 없고 연분홍 치맛자락 같았다. 청노새 짤랑대던 역마차였다. 삼학도 파도 깊이 흐르는 물길이었다. 쑥물 풀어놓은 득량만 잔주름이었다. 크게 웃고, 낮게 걷고, 맛있게 먹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유용주 발문집 ‘아름다운 얼굴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